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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Nov 05. 2020

하루가 별거지|신상 '버릇'을 기다린다

버릇을 만드는 버릇을 갖고 싶다






세 살 버릇이 백세 시대에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기억나지 않는 나의 세 살 버릇은 분명히 어딘가 잘 섞여 있겠지만, 버릇을 만드는 버릇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깜냥이를 보면 두 살 때 버릇이 5년 차 삶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첫 번째 버릇을 떠올리니 스핑크스처럼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 생각났다. 

“들어올 때는 하나지만 나갈 때는 여러 개인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장난감 가게이다. 

아이의 첫 번째 버릇은 ‘장난감 구경하기’이다. 

사방에서 안타까운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깜냥이는 정말 구경만 한다. 

처음부터 그런 곳이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지금도 샘플 장난감을 만지는 정도이고 떼를 쓴 적은 전혀 없다. 

아니, 한 번 있다. 





두 살 깜냥이가 뿅망치로 바닥을 치며 열심히 놀았는데 난 그게 거슬렸다. 

포장은 되어 있지만, 남이 쓸 새 장난감이 아니던가. 

살며시 뺏었더니 갖겠다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하나 사줄 법도 한데 야박하게 그 생각을 못했다. 

그 이후로 장난감 가게는 구경만 하는 곳이라는 편견이 생긴 것 같다. 

그때만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이 물든다. 

아무래도 오늘은 깜냥이랑 수수께끼가 가득한 보물섬에 가야겠다. 

내가 비상금을 깰 것이다. 

물론 아이는 안 살 것이다. 

안도가 아니라 안타깝다는 감정을 단 채 오늘은 어떨지 지켜본다.




  

두 번째 버릇은 ‘마스크 끼기’이다.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장시간 마스크를 쓰는 일이 생겼다. 

어릴수록 버릇이 쉽게 든다는 것을 깜냥이를 통해서 실감했다. 

마스크를 거부하는 일이 종종 있어서 유치원을 어떻게 보낼지 한동안 걱정했다. 

그랬던 기우杞憂가 기화氣化되어 사라졌다. 

벗는 것을 잊을 정도로 잘하고 다닌다. 





맑은 공기를 맡으며 함께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안 해도 될 버릇을 강요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어른의 한 명으로서 아이의 미래를 내버려 뒀던 게 너무나 미안했다. 

유아를 넘어 초등학생을 보면 마스크를 그래도 잘 끼는 편이다. 

중‧고등학생으로 가면서 마스크가 무거운지 점점 턱에 걸치는 턱스크가 늘어난다. 

그리고 인격의 완성체라고 불리는 어른은 턱스크를 하거나 아예 착용하지 않고 활보한다. 

아직도 자연인의 모습을 자주 본다. 

나이만 먹은 인간에게 부탁해도 돌아오는 건 욕과 주먹뿐임을 뉴스로 잘 알고 있다. 

가끔은 유아만도 못한 버르장머리를 바르게 가르치는 어른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 

평생 공부만 필요한 게 아니라 버릇도 평생 길러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졸업하면 어떨까. 

살며시 크리스털 명패를 파본다. 

‘진짜 어른학교 교장 메마른 남자’     





마지막 버릇은 ‘뒤로 걸어가 앉기’이다. 

깜냥이는 장난감보다 책을 좋아한다. 

내가 아빠 다리를 하면 책을 들고 슬금슬금 뒷걸음질하다가 다리 위에 앉는다. 

그때부터 책 삼매경이 시작된다.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기도 하는데 6번 넘게 읽을 때는 괴롭다. 

행여나 줄여 읽다가 자기가 생각한 문장이 들리지 않으면 빠졌다면 떼를 쓴다. 

그래도 나는 깜냥이가 뒷걸음질치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그래서 장난꾸러기처럼 아이가 엉덩방아를 찧게 피하곤 했다. 

귀여운 걸 대하는 이 고약한 심리란 뭘까. 





아이 버릇의 하이라이트는 도서관이었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른 깜냥이가 흥이 넘치게 춤을 추며 뒷걸음질치다가 품에 들어왔다. 

“어마!”

낯선 소리에 돌아본 깜냥이가 당황한다. 

그렇다. 

유아 자료실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의 다리를 차지한 것이다. 

놀란 아이가 후다닥 뛰어서 내 품에 들어온다. 

터지는 입구멍을 꽉 잡았다. 

소는 뒷걸음질로 쥐를 잡는다는데 깜냥이는 무엇을 잡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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