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약속을 하십니까?
종종 가던 실내 동물원이 망했다.
얼마 전 아내에게 같이 가지고 했더니 폐업 소식을 알려주었다.
제법 잘 되는 곳이었는데 코로나 19가 야속했다.
정든 가게가 사라질 때마다 내 추억의 일부가 돌밭이 되는 것만 같다.
당당했던 50% 할인권이 내 눈치를 본다.
할인권이 내게 기약할 수 없는 약속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즐거움을 줄 수 없는 ‘뻥약속’을 싫어한다.
온종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낸 날이 많았던 취업준비생 때 생긴 버릇이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나 듣는 말이 진솔하길 바랐나 보다.
그래서 언제 한 번 만나자고 하는 군대 동기 형을 믿지 않았다.
원하는 날짜로 잡으라고 했지만, 항상 알겠다고만 하고 연락이 끊겼다.
결국, 형은 내 결혼식과 엄마 장례식에서 볼 수 있었다.
나도 뻥약속을 넘치게 쓴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 썼던 가장 큰 뻥약속은 유치원 때였다.
엄마와 길을 걷다가 쇼윈도에 걸린 웨딩드레스를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참 곱고 아름답다며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어린 마음에 엄마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저거 사줄게. 조금만 기다려.”
“진짜? 그럼 아들이 다 클 때까지 열심히 기다려야겠네.”
엄마는 기뻐하며 빙그레 웃었다.
“언제가 됐든 엄마 꼭 사줄 거야.”
어린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이룰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썼던 가장 큰 뻥약속은 대학교를 졸업하는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많이 주저하다가 내게 말을 건넸다.
“친구가 땡땡 사립학교 교장으로 있는데 거기 가는 건 어떻겠니?”
그 당시에는 남자 교사가 귀해서 졸업하자마자 사립학교로 스카우트도 종종 되던 시절이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취업 경쟁률이 급격히 올라가는 시점이라서 사실 언제 임용시험에 붙을지 알 수 없었다.
편한 길과 어려운 길이 내 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안 갈래요.”
아저씨의 호의는 감사했지만, 아버지가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낮은 자세로 있어야 하는 게 싫었다.
나 역시 빚진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걱정하였다.
“시험이 아주 힘들 텐데 괜찮겠니?”
그때 내가 뻥약속을 했다.
“그냥 하면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을 지킬 때까지 7년이 걸렸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돌아가도 내 선택은 변함이 없다.
뻥약속는 언 발에 누는 오줌과 같아서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발이 어는 건 둘째치고 지린내가 난다.
심은 말은 새싹만 나고 썩어버려서 자리만 차지한다.
그러니 같은 말을 또 뿌리면 그만큼 신뢰의 땅이 줄어드는 셈이다.
최근에 출장을 나갔다가 우연히 내 결혼식을 축하해준 동료 선생님을 만났다.
개인사를 서로 주고받다가 대뜸 내게 묻는다.
“아직도 아내에게 프러포즈해요?”
결혼식장에서 매년 아내에게 프러포즈하겠다는 공약을 했었는데 선생님은 그게 인상적이라고 했다.
올해로 7년 차 부부.
나는 일곱 번째 프러포즈를 준비 중이다.
그렇다면 나한테 한 가장 큰 뻥약속은 무엇인가?
지금은 어떤 뻥약속을 뿌리고 있는가?
이 질문에 빨리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후회 없을 때까지 도전할 때 업그레이드 버전의 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다운로드하시겠습니까? YES/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