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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Nov 11. 2020

하루가 별거지|곁에 무엇을 위한 선이 있을까?

도로 여행





새벽길은 너그럽다. 

북적이는 차도 없고 조급한 마음도 없다. 

평소보다 일찍 나온 덕분에 밀리는 구간에서도 여유롭다.

초 단위로 다투며 갔던 그 길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차이는 단 하나, 정체 구간이 없는 마음의 길 덕분이다. 

참으로 간사하다.

문득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마음도 있는지 궁금해진다.     





터널이 나왔다.

터널을 들어가면서 숨을 참아본다.

터널에서 나올 때까지 숨을 멈추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동생들과 열심히 참았다. 심지어 터널을 나오면 누가 오래 참는지 대결을 했다.

서로 코에 손가락을 대면서 감시했지만, 사실 천천히 쉬면 알 길이 없었다.

누가 먼저 “푸하”하고 숨을 쉬면 덩달아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나는 얄밉게 5분쯤 지나서 “푸하”하고 숨을 거칠게 쉬는 척했다.

참으로 간사하다.

이제는 깜냥이에게 나의 필승전략을 전수해야겠다.     





터널에는 하얀 실선이 길게 났다. 

차선을 바꾸지 말라는 실선이 요즘은 다르게 보인다.

묵묵히 외길 인생을 사는 장인이 걷는 길 같다.

아무리 옆이 비어있어도 막히는 앞을 소신대로 걸어간다.

그런 분을 보면 다른 길을 가더라도 옆에서 응원하고 싶어 진다. 





그러고 보면 도로는 인생과 비슷하다.

실선으로만 이루어지면 앞만 보면 되지만, 그런 삶은 없다.

차선을 바꿔야 하는 점선은 언젠가 나타난다. 

도로끼리 만나는 곳에서 좌나 우로 빠져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옳은 길을 가기 위해서 유턴도 과감하게 해야 한다.

때론 미리 앞의 사고를 예상하고 실선을 뚫어 점선으로 만들어야 한다.      




    

생각할수록 도로에 인생이 녹아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정해준 실선대로 살지만, 점점 실선에 틈을 내고 나만의 점선 길을 만들어 간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신입사원으로 들어가면 실선대로 다니지만, 나중에는 나만의 점선 길이 없으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실선은 확고한 목표와 의지의 길이면서 동시에 나태와 자만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실선을 뚫어 점선을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차선을 바꾸면 다른 실선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인생이 고달프고 신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고속도로 나들목을 빠져나간다. 

멀리서부터 색이 있는 이 길을 좋아한다.

오즈의 마법사를 손쉽게 찾는 노란 벽돌길에 머문 기분이다.

초록색, 빨간색 길을 찾으려고 차들이 분주하게 교차한다.

어쩌면 삶은 보이지 않는 색의 길이 펼쳐진 것과 같다.

조금이라도 색을 감지하면 조금은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질문이 삶의 내비게이션을 대신한다.

“이 행동이 이 길을 가는 데 정말 도움이 될까?”

나는 매일 선택했기에 같지만 새로운 길을 오늘도 즐긴다.
















도로 여행     





저 길에 서면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아서


가방 한 개와 책 한 권을 챙겼다     





길 위에 오래 서보니


떠난 것도 잊은 채


챙긴 걸 짐이라고 여겼다     





길에서 겨우 벗어나니


또 여행이 가고 싶어서


도로 한 아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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