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글을 읽으면..
아내가 내 글을 읽었다.
사실 아내에게 글을 보여주는 걸 즐기지 않는다.
그녀가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내 몸에 달린 깃털이 뽑히는 기분이다.
브런치의 스크롤바를 쓱 내리면 나는 신경 쓰지 않는 척 먼 산을 본다.
하지만‘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것처럼 고개가 나도 모르게 돌아간다.
저기서 왜 멈췄지?
글이 이상한가?
그녀는 다 본 뒤에도 말이 없었다.
내가 마른침을 두 번 삼킨 뒤에야 입을 뗐다.
“글이 길어. 에세이인데 시같이 쓰는 건 좀 그래. 창의적인 건 좋은데 그때마다 글이 매끄럽게 안 읽혀. 가볍게 읽고 싶은 독자한테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리고 인용은 줄였으면 좋겠어. 글에 잘 녹지도 못했는데 억지로 붙인 느낌이야. ”
냉철하고 비판적인 말에 내 깃털은 모조리 뽑혔다.
맞는 말이라서 반박을 할 수 없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원한다면 읽기가 편해야 한다.
정형적인 글이 되기 싫어서 욕심을 부렸는데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고 어깨가 넓어진 내가 창피했다.
결국 내 글의 맨살이 드러났다.
몸이 달아올랐다.
썼던 글을 모두 지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 또한 성장하는 나를 기록하는 것 아닌가.
부끄러움을 참아보기로 했다.
물론 붉어진 몸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실은 내 글을 객관적으로 읽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쓴소리가 있다는 것은 성장판이 여전히 열려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러니 좁은 어깨로 처지지 말자.
내가 아내와 연인이 되었을 때 글쟁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아직 인정받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비평가를 설득할 수 있을까.
그녀의 덤덤한 말에 한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할 만큼 녹다운 knockdown 된 아픔이 새삼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마다 오기가 생겼다.
이번은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 약점에 정확히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KO패 당했다.
아니, 쓰러지고 싶었다.
다시 일어날 때마다 난 달라져 있으니까.
그래도 꽤 아프니까 다음 펀치는 내년에 맞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