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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Dec 16. 2020

난 대류 인간이었다.

산책뒤끝記

오늘은‘대류對流’라는 낱말에 꽂혔다. 



여러 가지 생각을 섞어 글로 만들고 싶은데 머리가 금방 뜨거워진다.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머리에서 섞여야 한다. 

마치 연금술사처럼 두서없이 펼쳐진 재료를 합친다. 

운이 좋으면 새로운 성질을 가진 화합물-두 가지 이상의 원소로 이루어진 순물질-이 된다. 

조용한 새벽에 참신한 글이 탄생하는 기적을 보면 온종일 기분이 좋다. 

최초 목격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행복은 한 뼘 안에 있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고통 역시 배차시간을 무시한 채 어김없이 찾아온다. 

열심히 자료를 찾고 생각을 합쳐보지만 엉뚱한 혼합물-물리적으로 단순히 섞인 물질-이 되기도 한다. 

혼합물은 내 머리를 부글부글 끓게 한다. 

이때 쓴 글은 어렵거나 어색하다. 

심지어 통일성도 없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나는 공원으로 도망친다. 

새벽 공원은 뜨거운 나를 가리지 않고 받아준다. 

머리가 조금씩 식는다. 

문득 내 행동이 대류현상對流現象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액체나 기체의 가열된 부분은 팽창되어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던 부분은 내려오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현상. 

내게도 대류현상-글을 쓰다가 머리가 뜨거워지면 공원으로 도망가는 행동-이 있다. 

바로 검증을 시작했다. 

머리가 복잡하고 열이 날 때 밖으로 나가는 명백한 결과만 수집했다. 

탁 트인 공원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면 열이 나고 아팠던 머리는 금세 괜찮아졌다. 

귀가 아플 정도로 추운 날도 망설임 없이 나갔다. 

머리가 얼얼해지면 높았던 열은 짙은 수증기를 뿜으며 누그러졌다. 

다른 시간대도 마찬가지였다. 

난 개인 시간이 생기면 유목민처럼 돌아다녔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가 머리가 타오르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다. 

때론 시원한 은행이나 서점에 앉아서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그렇다. 

난 머리가 뜨거울 때마다 식힐 곳을 찾아야 하는 ‘대류 인간’이었던 것이다. 

대류 인간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머리를 뜨거워질 때까지 자기를 괴롭히는 걸 좋아한다. 

둘째,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돌아다닌다. 

좋게 말하면 머리가 아플 때까지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을 학대하고 달래는 것을 즐기는 변태일까. 

둘 다 나를 기대 이상으로 성장시키는 건 분명하다. 

차갑게 식기 때문에 글쓰기에 몰입하는 대류현상은 계속되었다. 

여기서 나라는 종족의 특성을 발견했다. 

몰랐던 내 행동이 대류 원리와 척척 맞아떨어졌다. 

왼팔 이두근과 삼두근 사이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뜨거워지면 벗어나는 건 나만 가진 본능일까? 

아니다. 

누구나 뜨거운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식은 사람은 다시 열을 올린다. 

일, 여행, 공부, 휴식, 꿈, 병 같은 것이 우리에게 뜨거움과 차가움을 교차하게 한다. 

대류현상이 반복되려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망각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맙소사! 

사람은 대류를 한다는 뜻밖의 가정假定을 얻었다. 

-노벨상 후보가 되어도 겸손하게 사양하겠다.- 

복잡한 마음은 머리에 열을 올렸고 때론 두통을 일으켰다. 

증상이 생기자 도피 행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행동은 의지라고 생각했는데 환경을 바꾸기 위한 본능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환경만 바꾸면 나를 바꿀 수 있다’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대류를 위해 어떤 환경을 바꾸고 있을까. 

지금 환경이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최소한 나를 가열하거나 식히는 물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열정이나 휴식을 담은 어떤 것도 좋다. 

아내에게 실물 크기의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사고 싶다고 떼쓰다가 거절당하고 쓴 글은 절대 아니다. 

난 그저 대류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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