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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Mar 11. 2021

산책필유아사散策必有我師

산책뒤끝記

날이 풀렸는지 추운 새벽에도 봄의 태동이 느껴진다.



곳곳에서 나무의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하늘에는 새가 한결 부드러운 날갯짓을 뽐낸다. 

덩달아 나도 땅을 가볍게 건드리는 걷기 춤으로 화답했다. 

걸을 만한 날씨 덕분에 인적이 드물었던 산책길로 첫 번째 사람을 만났다. 

모르는 사람이어도 반갑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등산과 달리 산책을 할 때는 인사에 인색하다. 

자연과 함께인 산과 달리 공원은 자연과 절반만 어우러졌다고 믿어서 마음도 반만 열리나 보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할머니는 가래 섞인 기침을 계속했다. 

코 아래로 내려간 마스크를 보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비말이 신경 쓰였다. 

돌아갈까 하다가 최대한 빨리 지나가기로 했다. 

눈을 감고 뛰면서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몸을 털었다.

한참을 달리다가 숨을 헐떡이며 제자리에 섰다. 

사람을 만난 반가움은 어디로 가고 할머니를 꺼리는 내가 미웠다. 

마음은 이렇게 간사하다. 

조금만 상황이 바뀌어도 마음은 달라진다. 

스위치를 켰다가 끈 것처럼 쉽게 바뀐다. 

이러니 변덕을 품은 나보다 행동하는 나에게 더 끌릴 수밖에.





잠시 뒤 산책길에서 두 번째 사람을 만났다. 

아저씨가 다가올수록 노랫소리는 커졌다. 

소음은 아저씨를 졸졸 따라다녔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들 사이로 지나갔다. 

스피커가 크게 울릴 때마다 공원은 도시 한복판으로 바뀌었다. 

아저씨에게 익숙한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불현듯 엉뚱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노래를 24시간 부르며 산다는 별난 이론이다.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노래가 흘러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난 제일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지금도 내 곁에서 다양한 화음을 만들어 낸다. 

나 같은 음치와 함께 불러주는 사람들이 고맙기만 하다. 

아이돌 그룹은 아니어도 몇 개의 신나는 아카펠라 그룹을 가진 게 자랑스럽다. 

또한, 나에게는 아름다운 노래가 어떤 이에게는 소음일 수도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때는 음량을 줄이거나 입만 벙긋하며 립싱크를 할 필요가 있다.






산책로의 끝에서 세 번째 사람을 만났다. 

세 명을 연달아 만난 건 정말 오랜만이다. 

봄이 왔다는 걸 사람만 보아도 알겠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복장이 앞서 갔다.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직 겨울의 시샘이 남아서 꽤 춥다고 느꼈는데. 

갑자기 장갑과 두꺼운 점퍼로 무장한 내가 이상해 보였다.

나는 그를 보며 추위를 느꼈지만, 그는 나를 보며 더위를 느꼈을 것이다.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추위조차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에는 많은 것에 정답이 있다고 확신했는데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상대적인 일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걸으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데 오늘은 세 분 다 스승이 되어주었다. 

짧은 인연이지만 나를 돌아보게 해준다. 

그렇다면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깨달음이 숨어있을까? 

자주 본다는 이유로 스승들의 조언을 흘려보냈다니. 

어리석은 나를 봄을 맞아 용서해본다. 

이제는 곁에 있는 보물을 찾으러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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