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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Mar 24. 2021

10퍼센트의 사람과 1퍼센트의 사람

산책뒤끝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서로의 길을 막을 때가 있다. 



내가 왼쪽으로 피하면 그도 왼쪽으로 오고 잽싸게 오른쪽으로 꺾으면 움찔하며 그도 오른쪽으로 온다. 

본의 아니게 농구의 페이크 동작을 취하며 잠시 코트 속 선수가 되곤 한다. 

왜 자꾸 길이 겹치는 걸까. 

길은 어디든 있기 때문에 공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가끔 생긴다. 

시작은 서부의 총잡이 같다. 

양쪽에서 서로를 향해 걸어온다. 

몸이 서서히 가까워지면 눈은 이미 상대를 파악한다. 

중반에는 치킨런(치킨게임) 같다. 

그대로만 걸으면 둘은 부딪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방향을 꺾어야 한다. 

나는 평화를 사랑하기에 최대한 상대와 먼 위치로 이동하며 걷는다. 

그러면 대부분 자연스러운 통행을 연출할 수 있다.





문득 안전하게 걷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접촉 상황을 막기 위한 ‘추돌 방지 전략’을 짜보았다. 

전략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걸음 분석 전략이 있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의 동선과 겹치는지 미리 따져보는 것이다. 

일기 예보관처럼 걸음을 추적하고 예측한다. 

둘째, 상황 판단 전략이 있다. 

특정 상황에 따라 내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다.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면 기존 위치를 고수하고, 과감하게 보폭을 옮기는 사람을 만나면 슬그머니 내 위치를 바꾼다. 

대화 또는 경치에 빠진 사람 역시 내가 먼저 피한다. 

셋째, 우발적 사고 대비 전략이 있다. 

동선이 다르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사고는 그 틈을 좋아한다.







어쩌다 나와 같은 위치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이 있다. 

그때 당황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난 슬금슬금 내 쪽으로 오는 사람을 ‘10퍼센트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마치 확인도 하지 않고 차선을 내 쪽으로 변경하려는 옆 차를 보는 것만 같다. 

내게 자석이 달렸는지도 모르겠다. 

10퍼센트의 사람 덕분에 위치를 세 번이나 바꾼 적도 있다. 

그들은 산책을 스릴 넘치는 액션 장르로 뒤집어준다. 

처음 10퍼센트의 사람을 만났을 때는 불쾌했다.

길을 일찌감치 선점했는데 왜 굳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걸까. 

나를 무시한 걸까. 

방향감각이 부족한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그들은 자연이나 생각에 취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주변을 보거나 생각에 빠지면 직진 보행이 힘들 수 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10퍼센트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양보해준 90퍼센트의 사람들이 새삼 고맙다. 

그리고 요즘은 산책 때마다 10퍼센트의 사람을 기다린다.

 ‘오늘 나와 옷깃 스치는 인연이 몇 명이나 될까’하고 말이다.





며칠 전에는 오후 산책에서 특이한 만남이 있었다. 

여러 명의 일행이 벽처럼 팔짱을 낀 채 반대편에서 걸어왔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피할 틈이 없어서 당황했다. 

나는 최대한 길의 끝자락에서 걸었다. 

위치는 겹치지만, 당연히 비켜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이 1퍼센트의 사람이었다. 

뜻밖의 추돌 상황까지 왔다. 

여전히 그들은 똑같은 위치를 고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는 수없이 최대한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자리에 서서 몸을 비틀며 비켜주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꽉 차다 못해 넘치는 길이 되었다. 

마치 테트리스 완성에 동참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1퍼센트의 사람’은 뭐라고 부를까. 

생각났다. 

글 소재 1순위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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