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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Mar 16. 2021

내 이름 짓기

산책뒤끝記

홀로 산책을 떠나면 입이 무거워진다. 



그나마 지인과 함께 걸어야 세상 사는 이야기 정도를 할 수 있다. 

단, 자연에 관한 소재를 꺼내는 건 드물다. 

자연을 향해서는 오직 감탄사뿐이다. 

자연은 나를 침묵하게 한다. 

어떤 때에는 나무, 풀, 꽃, 새에 관해 아는 상식이 없어서 묵언 수행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꽃을 알려주는 앱도 있지만, 마냥 신뢰하기에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어쩌다가 자연을 유창하게 설명해주는 분이라도 만나면 다시 그들을 소개받느라 눈과 귀가 즐겁다. 

물론 나중에는 미개한 머리를 탓하며 그냥 풀이라고 부른다. 

나랑은 또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만다. 





만약 인류 최초로 아무개가 자연을 만났다면 어떻게 이름을 지었을까? 

우리는 새로운 것을 기억하기 위해 기존의 정보를 활용하는 동물이다. 

첫 대사는 상상할 수 있다. 

“와! ○○하고 비슷해.”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면서 알고 있는 사물의 색이나 모양을 떠올리며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화살나무를 처음 본 사람도 그랬던 것 같다. 

화살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작은키나무로 가지를 보기만 해도 왜 화살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있다. 

나뭇가지마다 화살의 깃털처럼 날개가 달려있다.







옛날에는 화살나무의 재를 발라 몸에 박힌 가시를 뺐다고 한다. 

그래서 가시나무라고도 불렸다. 

이름은 또 있다. 

귀전우鬼箭羽라고도 일컬었다. 

여기서 전우는 마찬가지로 화살의 깃털 부위를 말한다. 

귀신이 쏘는 화살이라는 뜻으로 쓰는 사람도 있지만, 신병神病을 쫓을 때 화살나무를 썼다고 하니 귀신을 쫓는 화살이라는 뜻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다양한 캐릭터를 가졌다는 의미도 된다. 

입체적인 특징이 있어야 이름도 여러 개로 불릴 수 있다. 

요즘은 부캐(부캐릭터) 전성시대이다. 

한 때의 유행처럼 흘러가는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이곳에도 인문학이 숨어있다. 

부캐란 자신에 대한 근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를 발견하는 현상이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고정된 역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부 1 또는 직장인 1에 머물렀다. 

그만큼 자식에게 헌신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없는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남이 붙여준 이름을 많이 가진 사람과 내가 부여한 이름을 많이 가진 사람의 시대가 될 것이다.

전자는 사회, 직장 등에서 제시한 역할 1이 되고, 후자는 스스로 정한 브랜드가 된다. 

난 나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고 싶을까. 

그리고 난 그 이름을 얻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의 이름 중 하나는 선생님이고 그 역할은 공식적으로 남이 결정했다. 

물론 정한 일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것만 해서는 다른 이름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난 추가로 새로운 일을 사고 치는 타입이다. 

현재는 비밀 교사모임의 리더이고 그 외에 세 가지의 교사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수업과 학급경영도 매년 새로운 것을 하나씩 시도 중이다. 

물론 언제나 성공적인 건 아니지만, 실패가 주는 피드백은 훌륭한 자산이 됐다. 

브랜드가 될 부캐를 얻기 위한 질문은 단 하나이다.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교육은 없을까?”

그 질문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 지방에서 전학 오겠다는 학부모의 전화를 받았다. 

용건을 마친 뒤 학부모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아는 지인한테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좋다고 소문이 나서….”

부끄럽지만 몇 차례 이런 전화를 받았었다. 

그럴 때마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내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자료 1로 믿는다. 

10년 뒤, 교사로서의 내 이름은 어떻게 바뀔까? 

그건 잘 모른다. 

하지만 만나는 아이들이 매년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될 건 안다. 

화살나무처럼 여러 개의 이름을 갖는 그날을 위해 오늘을 살고 싶다. 


*특수학급은 대개 한 학교에 1개의 학급만 있어서 전학을 온다는 것은 우리 반 아이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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