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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Apr 05. 2021

흰말채나무는 왜 붉을까?

산책뒤끝記

산책길을 떠나면 눈을 사로잡는 나무가 하나쯤 있다.



오늘은 흰말채나무Cornus alba에 눈길이 갔다.

말의 채찍을 만들기 좋은 나무라서 ‘말채’가 붙었다고 한다. 

흰말채나무는 공원이나 수목원에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늦봄에 꽃이 피지만 벚꽃, 개나리, 진달래처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꽃은 아니다. 

그는 겨울에 빛난다. 

흰말채나무는 뻘건 가지를 가졌다. 

그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추운 계절에도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름에 흰색이 붙었을까? 

처음 나무를 보았을 때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사람은 이름을 닮지만, 자연은 이름이 자연을 닮는다. 

닮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존재한다. 




흑백사진만 찍으려 했으나 흰말채나무는 역시 색이 있어야 빛난다.




흰말채나무는 꽃과 열매가 흰색이다. 

특히 열매가 허연 빛깔을 뽐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열매라는 건 나무가 가진 소중한 결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짙은 빨간 손을 흔들며 나를 유혹하는 흰말채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스멀스멀 이름에 대한 의구심이 자꾸 샘솟았다. 

핏빛 천인 물레타muleta를 흔드는 투우사에게 달려가듯 나무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나를 이해시키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휴대폰으로 검색한 뒤에야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말채나무는 총 8종이 있다. 

그중 붉은말채나무가 있었다. 

유럽에서 먼저 다른 나무를 붉은말채나무라고 부르는 바람에 비슷하게 생긴 흰말채나무는 아무리 줄기가 빨개도 ‘붉은’이란 낱말을 못 쓰게 된 것이다. 

대신 열매가 흰 점을 고려해서 흰말채나무라고 불렀고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유럽에서는 ‘붉은말채나무가 참 뻘겋구나’라고 말하는 게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흰말채나무가 참 붉다’라고 하는 건 어색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 같은 사건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중국에서는 홍서목红瑞木이라고 부른다. 

붉은색이라는 것을 그대로 이름에 쓰고 있다. 

일본에서는 시라다마미즈키白玉水木라고 부른다. 

열매가 희다는 뜻이 이름에 들어있다. 

둘 다 이름이 자연을 잘 닮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사람은 정보를 인지하면 수용, 응용, 거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수용은 있는 그대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단순한 처리 과정이라서 정보의 빠른 흡수가 가능하지만, 수동적이고 창의적이지 못하다. 

흰말채나무도 수용의 결과다. 

학명 alba에 흰색이 들어 있다고 똑같이 흰 나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필터링 없이 받아들이는 ‘흰말채나무 왜곡’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양의 정보를 소화하다 보니 때론 비판적인 시각 없이 정보를 받아들일 때가 있었다.

이쯤 되면 나도 홍길동 사촌 정도는 되지 않을까. 

부끄럽다.

다음으로 응용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불필요하거나 맞지 않는 정보를 제거하는 과정과 자연히 생긴 여백에 올바른 해석을 넣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그 사이에서 의미 있는 창작도 가능하다. 

열매가 희다는 분명한 의미를 넣었던 일본이 그랬다. 

마지막으로 거부는 정보를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두 종류로 나뉜다. 

첫째, 새로운 정보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폐쇄적 거부가 있다. 

그 결과는 고립뿐이다. 

둘째, 기존의 정보가 더 낫다고 여기는 합리적 거부도 있다. 

다른 정보를 기존 정보와 충분히 검토한 뒤에 이루어진 거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둘 중 어떤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에 있는 붉은말채나무를 중국에서는 뭐라고 부를지 궁금해졌다. 

유럽의 붉은말채나무 열매가 검은색이니 검은말채나무라고 했을까?





누구를 울릴까



내 안에서 울리는 이름이든


당신이 정한 이름이든


가슴에서 메아리치게 하는 건


오직 내 자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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