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뒤끝記
새벽은 세상이 열리는 경이로운 시간이다.
해가 일궈낸 하루 앞에서 우리는 깨고 잔다.
공원에 발 도장을 몇 걸음 찍다가 하늘을 보니 벌써 먼동이 트려 한다.
하늘 밑자락이 붉고 꺼멓다.
내가 아닌 반대쪽 세상에서 비추는 빛을 하염없이 보았다.
형체만 보이는 그림자 세상에 몇 번이고 마음을 썼던가.
난 아직도 새벽에 산다.
세세하게 보지도 못하면서 그게 인생이라고 그럴듯한 묘사만 쏟아낸다.
단 한 번도 내가 빛인 적이 없다.
수치심에 도망치듯 편한 길을 뛰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그림자는 나보다 더 빨리 달아난다.
피터팬처럼 그림자를 잃을까 봐 그림자 발끝을 정신없이 좇아갔다.
불행히도 난 그림자를 꿰매 줄 웬디가 없다.
겨울바람이 양 볼을 빨갛게 문지른다.
그래도 등은 따스하다.
빛을 등지니 나도 이제 밑은 붉고 형체만 보일까?
어쩌면 가장 긴 새벽은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을 함께 할 새벽 꽃이라도 피면 좋으련만.
동장군 시샘에 새벽 풍류를 즐기는 꽃은 피난 갔다.
대신, 공원과 어울리지 않는 굴착기가 동장군 영역을 한 움큼 파낸다.
시끄러운 소리는 나를 이성적으로 만든다.
미간이 주름을 세 개쯤 수놓자 연신 입김을 내뿜으며 움직이는 사람이 보였다.
있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피는 새벽 꽃이.
활짝 핀 사람꽃은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붙는다.
이번에는 그림자가 뒤에서 바삐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