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단단한 바위 같은 글을 깎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큼직큼직 거칠게 깎는 단계를 거친다.
날카로운 정을 들고 네모난 글 덩어리를 이쪽저쪽 세게 치다 보면 결대로 쩍쩍 갈라진다.
때론 이렇게밖에 못 깎는 나를 자책하기도 하고 우연히 쪼개진 생김새에 감격하기도 한다.
빈 종이를 채우다 보면 어느새 겸손해진다.
그렇게 부끄러운 초고가 완성된다.
나는 글의 의도를 알지만 다른 사람은 난감해하는 수준이다.
헤밍웨이는 초고를 걸레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 말을 공감하지 않는다.
내게 초고는 순수한 ‘날 것’이다.
초고가 완성되면 설렁설렁 정을 가볍게 톡톡 치며 형태를 잡아간다.
고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초벌구이 과정에 해당한다.
어느 정도 모양을 알아볼 때쯤이면 자신감도 생긴다.
물론 글 덩어리에 정만 사용하니 투박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나는 이 단계를 좋아한다.
내가 브런치에 쓴 많은 글은 이 수준에 머문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조금은 글을 가볍게 올리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브런치 글마저 출판사에 보내는 것처럼 전력투구로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지쳐서 펜을 놓게 된다.
둘째, 정을 치는 기본기가 조금은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퇴고의 세밀함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거침없이 그리는 게 나한테는 더 필요하다.
셋째, 다양한 작가님들과 소통하고 싶은 갈증 때문이다.
작가는 글을 쓸 때마다 고립되기 일쑤이다.
게다가 자기 글에 관한 피드백을 얻기도 쉽지 않다.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을 걷는 기분이다.
그때마다 브런치 작가님이 주는 격려와 반응은 한 줄기의 빛이 된다.
완성된 글 덩어리가 제법 또렷해지면 본격적인 퇴고 과정을 거친다.
상을 갖춘 글 덩어리를 정이 아닌 손으로 꾹꾹 누르며 매만진다.
손으로 모양새를 꾸미는 것은 힘들고 지루하지만, 꼭 필요한 세밀화 과정이다.
난 고기의 재벌구이를 떠올리곤 한다.
딱 먹기 좋은 형태로 글을 굽는다.
같은 문장을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면 한 시간은 그냥 흐르기 일쑤다.
본 글을 반복해서 읽고 고치는 과정은 매일 같은 배경의 사막을 맴도는 기분이다.
인내심이 폭발하면 글 덩어리를 두 주먹으로 내리치고 싶은 욕망이 일렁인다.
사실 퇴고는 끝이 없다.
출판사로 보내는 마감일이 사막을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마감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날이다.
끝이 있기 때문에 결과 역시 낼 수밖에 없다.
애증이 깊은 마감일이 자꾸 보고 싶은 건 아마 다음 책에 관한 사소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만든 글 덩어리는 사실 내가 제일 궁금하니까.
덧붙이는 말. 종일 눈 빠지게 글을 계속 고쳐서 결국 원고를 보낸 나를 격려해본다.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