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창고 Jul 13. 2021

기대할까? 각오할까?

유치원생 아이가 스승입니다.





기대期待




기대 없는 삶은 의미를 무너뜨리는 행동


무너져도 끽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기대하는 삶은 의미를 만드는 과정


무너져도 내 목소리는 들린다       










   

퇴근 후 아이가 쪼르르 오더니 말합니다.

“각오해!”

갑자기 무엇을 각오하라는 걸까요? 

저랑 몸놀이라도 하자는 걸까요? 

깜냥이는 바삐 유치원 가방 속 물건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각오해!”

무언가를 조심조심 뒤에 감추고 저한테 다가옵니다. 

불행히도 작은 몸 사이로 작품이 다 보입니다.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반반 섞인 아이는 엉성한 종이비행기를 내밉니다. 

저는 얼른 물개 박수와 함께 호들갑 가면을 썼습니다. 

부모가 되면 연기력이 늡니다. 

아마 깜냥이는 ‘각오해’가 아니라 ‘기대해’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각오는 앞으로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말합니다. 

기대는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둘 다 미래를 준비하지만 느낌은 매우 다릅니다. 

각오는 비장하고 엄숙하며 쉴 새 없이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옵니다. 

언제든지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기필코 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여유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팽팽한 긴장의 끈은 불안까지 동반합니다. 

만약 끈이 끊어지면 오랜 슬럼프에 빠지기도 합니다. 

각오 앞에는 재미와 흥미의 기름기를 쫙 뺀 진지함과 간절함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다릅니다. 

기대하는 바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도 모르게 느껴집니다. 

액션을 하기도 전에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뿜어져 나옵니다. 

생생하게 기대할수록 활기가 넘치고 가슴이 뜁니다. 

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얼굴은 밝아지고 눈은 맑아지며 마음은 살짝 흥분상태가 됩니다.

‘각오’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결과를 기대합니다. 

결과가 나오면 그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대’는 다릅니다. 

기대하면 우리는 행동하고 다시 결과를 기대합니다. 

기대할 때도 행복하고 행동할 때도 기대한 것을 하니 행복합니다. 

결과 역시 후회보다는 행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사람은 어렸을 때 기대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서서히 기대보다는 각오를 많이 합니다. 

어쩌면 의미 없고 재미없는 세상을 사는 건 나의 각오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허황한 꿈이 아니라 생생한 기대를 먹고삽니다. 

각오가 무조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각오는 정말 필요할 때 써야 하는 필살기나 전력 질주와도 같습니다. 

모든 영역을 각오하는 자세로 산다면 금방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각오 인플레이션은 각오의 가치와 질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기대합니까? 

잠시 기대에 기대 볼까요?











작가의 이전글 일상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