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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Dec 22. 2021

아이가 코로나 검사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온 문자 하나가 우리 집을 흔들었다. 6살 깜냥이가 다니는 유치원과 태권도장에서 아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밀접 접촉자여서 바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다. 급히 직장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는 병원을 열심히 찾았다. 내 마음은 진정하지 못하고 계속 쿵쿵 뛰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 속도 모르고 유치원에  안 간다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극과 극의 감정은 한순간에 맞닿기도 한다. 근무하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세 차례 나왔을 때와 느낌이 또 달랐다. 확진자가 사상 최대라는 뉴스 속 사실이 이제 내 방문 앞까지 왔다는 체감 때문이리라.






차를 끌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 8시 반도 안 된 시각에 병원 앞은 끝도 보이지 않는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똬리를 튼 코로나 뱀 한 마리가 기다리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기 싫어서 잘 피해왔는데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우리는 꼬리가 되었다. 문제는 한파였다. 하필 칼바람이 쌩쌩 부는 한파의 시작일이라 몸은 금세 차가워졌다. 어제 날씨만 생각하고 가볍게 나선 게 실수였다. 덜덜 떨며 접수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호랑이 할아버지가 여기에 온 이유를 물었다. 말투 자체가 이미 화가 많이 난 호랑이였다. 앞에 사람이 우물쭈물 대답을 잘 못하자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드디어 우리 차례. 아내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척척 필요한 살코기 답만을 내놓았다. 다행히 호랑이는 울지 않았다. 접수번호는 115번. 우리 앞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9시부터 검사라서 이제는 추위와의 싸움만 남았다. 덜덜 떠는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6살 깜냥이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거나 말을 건넸다.

“어휴, 어린 데 여기까지 왔어?”

어떤 분은 핫팩 두 개를 아이에게 주었다. 뱀과 호랑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따뜻한 사람들도 있었다. 역시 극과 극의 감정은 닿곤 한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따사롭고 고마움이 차오른다. 너무 추워하는 아내는 차로 보내고 아이와 펄쩍펄쩍 뛰며 시간을 보냈다. 9시가 되자 드디어 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었다.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는데 갑자기 깜냥이가 내 팔을 움켜쥐었다.

“나 오줌 마려.”

“뭐?”

머릿속에 폭설이 내린 기분이랄까. 시간이 없었다. 앞에 서 있는 아저씨에게 자리를 부탁한 뒤에 아이를 들고뛰었다. 병원 안 화장실은 이용할 수 없어서 지정된 화장실까지 달렸다. 꽤 먼 거리였다. 숨이 찼지만 배배 꼬는 아이를 보자 더 다급해졌다. 아기 뱀이 여기 있을 줄이야. 화장실에는 이미 두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를 보자 한 분이 양보해주셔서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아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빠르게 줄던 코로나 검사 줄이 떠올랐다. 다시 달리고 또 달렸다. 꼬불꼬불 구부러진 줄을 뚫고 파마머리를 한 아저씨를 열심히 찾았다. 아저씨도 고개를 들고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무나 감사했다. 이제 더는 이벤트가 없기를 바라며 앞을 보니 검사받을 사람이 열 명도 채 남지 않았다. 다행히 무사히 검사를 받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정말 신속했다. 역시 대한민국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스템도 좋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건 정 많고 친절한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크든 작든 베푸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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