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할머니라고 불리던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짝은 많이 힘들어했다. 다 큰 자식들은 떨어져 살아서 그녀의 존재를 가끔 느끼지만, 남편이라고 불리는 그는 그녀와 매일 함께 보냈다가 하늘로 보내주었다. 나이 들어서도 손을 잡고 다녀서 동네 사람들이 노부부를 좋게 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단골 마트도 가지 않으려 한다. 그림자가 끊긴 그녀의 안부를 묻는 게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랬듯 그는 후회했다.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본인을 탓했다. 그녀에게 평생 속죄해야 한다고 여겼다. 자식은 그런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식은 부모 앞에서 그냥 자식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로워서 집을 팔려고 했지만, 그는 다시 생각을 고쳤다. 여전히 그녀는 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곳에 있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그녀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더 바빠졌다.
삼 형제는 그를 많이 걱정했지만, 그는 역시 자식이 알던 그였다. 달라진 점이라면 더 바쁘게 지낸다는 정도였다. 늦은 나이임에도 배움에는 청년과 다름없었다. 그는 작업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예전부터 결심한 영상 작업을 시작했다. 영상 편집의 기본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는 우직하게 한 발씩 걸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첫 작품이 나왔고 이어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미술 전공이 살려 전시회를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여러 편을 자식에게 보여주며 부족한 점을 알려달라고 하는 열정까지 보였다. 구독자는 43명에 불과하지만, 그는 점점 전문가다운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던 그는 지금 첫 번째 노래를 작곡했다. 그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세월을 야속하게 여기는 가사가 남겼다. 노래까지 직접 불러서 자식의 마음이 먹먹해졌다. 중독성이 있어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그는 기존에 했던 영어 공부, 미술 작품 활동, 운동도 꾸준히 한다. 후회 없이 사는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듯하다.
그는 달라졌다.
모든 일을 스스로 한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다. 자식 세대와 달리 주부였던 그녀가 모든 집안일을 했었다. 그의 담당은 바깥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세 끼를 해결하고 빨래와 청소도 한다. 그는 생존을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 잔인한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자식으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모습이고 지금도 신기하게 보인다. 심지어 그가 차려준 아침을 먹으며 자식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그가 해준 밥을 한 번 먹었는데 전기밥솥이 만드는 밥임에도 밥이 죽이 되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여전히 그리워한다.
그가 그녀 이야기를 할 때면 입술이 무거워 보인다.
“예전에는 집이 원래 깨끗한 줄 알았는데 그런 거 하나 없더라. 구석구석 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화장실만 해도 곰팡이가 당연히 안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네 엄마가 그렇게 되고 며칠이 지났더니 여기저기 곰팡이가 생기더라. 엄마가 매일 청소한 거였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만 여겼네.”
그는 잠시 무거운 입술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벌써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한결같은 그가 걱정되고 안심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존경스러운 아버지다. 한순간에 녹슨 삶의 시계는 뻑뻑했지만 그래도 잘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