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와 리프트로 미국 여행
차 없이 뚜벅이로 미국에 살아도 좋은 세상이었다.
한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지만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우버와 리프트는 잔뜩 긴장했던 첫 탑승 이후 어느덧 말동무까지 얻게 된 기분까지 들게 만들었다.
네 달 동안 약 서른 번의 리프트 기사들과 약 열다섯 번의 우버 기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대부분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드라이버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러다 보니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들이 많았고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캘리포니아 우리 집에서 1분 거리에 살고 있던 이웃도 드라이버였고, 나의 룸메이트도 드라이버였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만난 드라이버들은 모두 다른 배경과 고향과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들도 모두 달라 드라이버의 음악적 취향을 발견하고 그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었다. 이들과의 대화는 책 한 권을 써 내려가도 될 만큼 또 다른 인생 경험처럼 느껴졌다.
2018년 6월 9일 12:03 뉴저지-> 저지시티 $23.99
나의 첫 우버 드라이버는 뉴저지에서 저지시티까지 이동하며 만난 멕시코 출신의 루이스였다. 나보다 작은 체구로 엄청나게 무거운 내 캐리어를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처음 타보는 우버였던지라 긴장하고 경계하고 있었는데, 루이스는 내심 백미러로 내 표정을 살피며 차 안 온도와 음악 볼륨의 크기까지 세심하게 체크했다. 그러다 물도 건네고 껌도 하나 건넸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은 받아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과 그동안 인터넷 뉴스로 봐왔던 안 좋은 이야기들이 떠오르며 순간 잔뜩 긴장한 나는 껌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앗. 미안." 루이스와 내가 동시에 내뱉었다. 그리고 그제야 긴장이 풀어진 나는 사실은 네가 나의 첫 드라이버라고 때아닌 고백을 했다. 루이스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영광이라고 대답했다. 루이스는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왔다. 저지시티의 높다란 빌딩을 손으로 가리키며 돈을 많이 벌어 저기에 집을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또 트렁크로 달려가 내 캐리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내가 일행을 만나는 것까지 확인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의 첫 우버 드라이버는 자신의 구체적인 꿈을 안고 서글서글 잘 웃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2018년 6월 17일 16:49 시애틀-> 공항 $22.44
시애틀은 나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한 달간의 미국 여행을 끝마치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 호텔 앞으로 리프트를 불렀다.
우버나 리프트는 일부 지역에서 합승을 선택할 수 있다. 처음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타면서 합승을 하는 게 미안하기도 했고, 안 그래도 낯선 드라이버 하나만으로도 어색한데, 다른 사람을 승객으로 만나는 건 더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이 익숙해지면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합승을 선택하곤 했다.
시애틀 나의 호텔 앞으로 데리러 온 리프트 기사는 덩치가 나의 한 세 배정도 되어 보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보고 차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지금껏 다른 기사들에 비해 엄청 귀찮아 보였다.
"가방이 조금 무거워."라고 말해주었다. 짐을 번쩍 들더니 그가 말했다. "하! 조금이 아닌데?"
어머어머. 지금껏 만난 드라이버들은 스스로가 매우 기쁘게 내 짐을 번쩍번쩍 들어주었는데 이 덩치 큰 사내는 뭐람. 이렇게 생각을 하며 차는 출발했고, 다른 동양인 여행자 하나, 그리고 서양인 하나를 태웠다. 그들의 캐리어는 트렁크에 실어줄 생각도 없었는지 트렁크 문만 열었다.
투덜대는 덩치 큰 사내였지만 그 역시 친절했다. 모든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했는지 확인하는 유일한 드라이버이기도 했고, 그만큼 안전한 운전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다른 탑승객의 캐리어는 하차 때도 끝내 꺼내 주지 않았지만, 내 무거운 트렁크만큼은 문을 열고 나와 꺼내 옮겨주기도 했다. 뭐지. 이 츤데레는.이라고 이내 생각했다.
나의 마지막 여행길이, 그리고 본격적으로 홀로 시작하는 미국 생활이 따뜻하게 만들어 준 이 드라이버도 기억에 남는다.
2018년 6월 25일 7:57 캘리포니아 집 -> 학교 $8.18
이날은 학교 생활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미국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학교 생활이었지만, 막상 학교를 다시 가 공부를 할 생각을 하니 심난했다. 결국 첫 등교의 부담감에 새벽 네 시에 눈이 번뜩하고 떠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기가 싫었던 나는 나 자신을 토닥이며 리프트 앱을 켰다.
복잡한 나의 이 마음을 위로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아프리카계 미국인 드라이버가 무려 벤츠를 끌고 집 앞으로 와 매우 정중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환영해 주었다. 잘 잤냐라는 통상적인 인사에, 사실은 오늘이 학교 첫날인데 너무 가기 싫어서 새벽 네 시에 깼지 뭐야. 지난 한 달간 나는 미국을 여행했고,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후 일주일 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막상 다시 공부를 하려니 끔찍해. 사실 난 대학교를 졸업한 지 꽤 됐거든.이라고 주절주절 말을 했더니 그 드라이버는 특유의 화통함으로 껄껄 웃으며 "너 너무 재밌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너는 분명 학교 생활을 잘 해낼 것 같다고, 오늘 첫 시간도 그리고 앞으로도 파이팅 하라며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룸메이트(하우스메이트) 폴은, 리프트 드라이빙을 하다 마음이 잘 맞거나 재밌는 손님들을 만난 날엔 그게 그렇게 좋다며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등교 첫날, 벤츠를 몰고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준 리프트 드라이버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오늘 만난 재밌었던 동양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