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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ilani Nov 26. 2018

미국에서 만난 드라이버들 (2)

캘리포니아에서의 만남들




2018년 7월 18일 9:54 LA 유니온 스테이션 -> 배링턴 $24.70(shared)

나 홀로 LA 여행을 떠나온 날이다. 너무나 안전한 얼바인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룸메이트들은 신신당부를 했다. 대중교통은 조심해. 홈리스를 조심해. LA는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야.

미국에 사는 가족들도 내가 혼자 LA에 간다는 말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 한다며 주의를 주었다.

안 그래도 LA의 치안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잔뜩 겁부터 집어삼킨 나는 대중교통은 절대 이용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하고 유니온 스테이션 역에 도착하자마자 리프트를 불렀다.

리프트 드라이버 Gor는 만난 순간부터 정신을 쏙 빼놓은 사람이었다. 불안하리만큼 어디론가 끊임없이 전화를 했고 마치 어둠의 조직이 거래를 하듯 은밀하게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무려 1시간 30분이 걸렸는데 급기야 Gor는 가는 길에 잠시 어디 좀 들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싶었는데, 그가 모든 사연을 이야기한다.

"이곳 LA에서는 최소 세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먹고살 수 있어. 리프트 드라이빙도 내 메인 잡이 아니고, 세 번째 직업으로 고급 차 부품을 구해서 개인에게 배달해주는 일을 하고 있어. 그 부품이 있는 카센터가 이 앞인데 잠깐 1분만 주면 안 될까?"

그러라고는 했지만 사실 이번 드라이버는 우버, 리프트 통틀어 가장 좋지 않은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정말 LA 사람들은 직업이 세 개는 있어야 하는 걸까 궁금해져 그때부터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대학 강단의 강사들도 두세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로 드라이버들을 만나면 본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2018년 7월 18일 14:26 LA 게티센터 -> 배링턴 $3.17(shared)

그는 내가 탑승 하마자 내 이름을 불러보며 자신이 맞게 발음했는지 물었다. 그리고는 게티 센터는 어땠는지 물으며 정중히 환영 인사를 건넸다. 그게 참 고마워 "반가워"라고 말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그의 이름을 내가 완벽히 발음할 수 있었던 건, 친구 중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연은 모른 채 자기 이름을 그렇게 한 번에 완벽하게 발음한 사람은 없었다며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곳에 살고 있는지, 여행을 왔는지를 물었다. "몇 달간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을 배우고 있지."라고 대답하자 탑승객들과 어떤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좋을지를 물어온다.

"그게 궁금해? 내 생각에 당신은 이미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인데?"라고 하자 정말 놀라움과 감동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다보며 "말도 안 돼.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너는 정말이지.. 너무 좋은 사람인 것 같아."라고 말한다.

굉장히 짧은 시간의 탑승이었는데, 이날의 드라이빙은 너무 많은 대화가 오갔고, 참 재밌었고, 순수하고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기쁨과 진심 어린 칭찬이 함께했다.

단순 광고성 프로모션인지는 모르겠는데 LA 여행이 끝난 후 리프트 측으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다. 드라이버가 나에게 최고 평점을 남겼기 때문에 한 달간 탑승 요금을 할인받게 되었다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바로 이 드라이버였다.




2018년 7월 19일 16:11 배링턴 -> LA 유니온 스테이션 $23.70(shared)

미국에서 우버와 리프트를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 드라이버와 함께 했던 날은 LA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인 날이었다. 하필 트래픽도 굉장히 심해 2시간가량을 탑승했는데, 트래픽에 갇혀 대로에 정차해 있던 순간은 마치 라라랜드의 첫 장면 속에 내가 들어가 앉아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던 순간도 너무 고된 드라이브 앞에선 서로 말을 잃고 정면만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예매해놓은 기차를 놓칠까 속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드라이버 Eric은 골목과 골목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길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서 마주하게 된 LA 뒷골목의 섬뜩한 모습들을 보게 되기도 했다. 노숙자들의 쉘터가 있는 골목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은 노숙자들이 찻길과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누워있다시피 했고, 또 어떤 길에선 날카로운 꼬챙이를 들고 정지해있는 차들 사이를 어슬렁 거리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역시 LA는 무서운 곳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고나 할까.

이런 LA를 내가 좋아할 수 있을까. 돌아오는 순간에도 이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차역에 도착했다. 너무 힘들었던 드라이빙이 끝이 나자 Eric도 그제야 다시 웃음을 찾으며 고생했다고 뒤를 돌아 나를 보며 웃어 보였다. 얼굴의 정면을 2시간 만에 처음 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LA 최고 훈남이었다. 아뿔싸.




2018년 7월 19일 19:47 터스틴 역 -> 얼바인 집 $7.77

LA에서 얼바인까지는 기차를 타면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LA 내에서 움직였던 2시간의 트래픽 이후 또다시 한 시간 반을 움직인 후 겨우 터스틴 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집까지는 10분 정도를 더 달려야 한다.

지친 몸을 하고 Ali를 만났다. 으레 하는 형식적인 인사로 여행은 재밌었냐고 묻는 그에게 '나 너무 지쳤어.'라고 답하자 그가 하하하라고 웃으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또 개인적인 대화가 오갔고, 몇 달간 만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말에 "이참에 그냥 여기에 정착하는 건 어때?"라며 조금은 당황스러운 제안이 건네 왔다. "아니,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기회가 생기면 나도 이곳에 더 오래 살고 싶지만 지금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회사도 다녀야 하거든."

너무 당연한 이유가 그에게는 전혀 이유가 되지 않는 문제인가 보다.

너 그거 아니. 미국은, 그리고 이곳 캘리포니아에는 잘만 찾으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 나는 사진 찍는 게 좋아서 이곳에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살고 있는데, 참 행복해. 너도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어. 이곳은 그런 곳이야.


그는 진심으로 나를 캘리포니아에 정착시키고 싶어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지, 어떤 프로세스로 이곳에 정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듣고있자니 이곳이 그렇게 좋은 곳인가 더 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그는 나에게 행운을 빌어 주었다.

"너의 앞 날에 행운을 빌어. 네가 어디서든 행복하길 기도할게."







미국에서 만난 드라이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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