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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ilani Jan 01. 2019

타코 튜즈데이

Taco Tuesday

캘리포니아에서 대니를 다시 만난 건 운명 같았다.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나는 캘리포니아가 얼마나 큰 곳인지 감히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캘리포니아가 고향이라고 했던 대니가 떠올랐다. 미국을 떠나 이곳저곳 여행을 하다 한국에 잠시 정착했던 그가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부를 물었는데, 세상에 얼바인 나의 집과 고작 15분 거리에 그가 살고 있었다.

일 년 만에 캘리포니아에서 운명적인 재회를 했다. 일 년 전 그와 헤어졌을 때처럼 허그를 나누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에게 물었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니?"


그로부터 일주일 뒤 다시 연락이 왔다. 월요일 밤이었다.

내일은 타코 튜즈데이야. 타코 먹으러 갈래? 


미국엔 매주 화요일이 타코 튜즈데이란다. 멕시칸 식당에 가서 타코를 주문하면 특별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타코 튜즈데이를 소개해 주겠다며 불러냈는데 나는 굳이 볼(Bowl)을 주문했다. "타코 튜즈데이에 타코가 아닌 볼을 먹다니." 그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때 타코 튜즈데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왜 튜즈데이가 타코 데이인 거지?"

나의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글쎄... 아무래도 둘 다 똑같이 T로 시작하니까?"

뭔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답에 한참을 생각했다. 월요일엔 원래 술 마시는 날, 화요일엔 화나서 술 마시는 날 뭐 이런 건가... 아니 근데, 목요일로 T로 시작하는데? 타코 썰스데이는 왜 안 되는 거지?

마치 처음 '왜?'라는 단어를 배운 아이처럼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곳에선 언제나 그랬다. 모든 게 낯설고 새로운 것들 투성이어서 그랬을까. 자꾸 'why'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들어낼 때마다 그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반문했다.


타코 튜즈데이를 처음 알게된 그 날 먹은 타코 볼



대니가 소개해준 타코 튜즈데이는 본질에 충성한 건전한 버전이었다. (?)

이후 학교 친구들을 통해 한참 목숨 걸고 놀기 시작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또 다른 형태의 '타코 튜즈데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서로가 서로를 몰라도 일단 파티를 연다.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파티 공지를 올리면 그 글은 share 버튼을 타고 여기저기로 퍼져 나가 그냥 같이 모여 즐기는 파티가 된다. 매주 화요일이면 한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타코 튜즈데이'라는 타이틀로 이벤트가 열리는데 학생들은 암묵적으로 이곳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사실에 합의한 것처럼 보였다. 이곳은 늦은 밤부터 시작되는 일종의 '클럽'이었다. 덕분에 수요일이 되면 결석하는 학생들이 부기지수였고, 출석을 해도 술냄새를 풍기며 정신을 못 차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실 이런 문화에 즐겁게 참여할 나이는 훌쩍 지났음에도 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은 화요일만 되면 나를 그곳으로 불러냈고, 그때마다 나는 적절한 핑계를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나 없이 파티에 간 클래스 친구들 사이에 한 번은 사건이 발생했다. 친구들 중 아직 미국 기준의 성년이 되지 못한 아이가 하나 있었던 것. 의리가 넘치는 아이들은 동양인의 얼굴은 잘 구분 못한다라는 통념 하에 신분증을 빌려주며 입장을 시도했다. 생각보다 더 타이트한 미국의 클럽 입장은 매의 눈을 가진 시큐리티에 의해 저지되었고 급기야 신분증을 위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경찰이 오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것. 결국 신분증 위조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괘씸죄로 클래스 친구들 전체가 그 레스토랑에 '영구 입장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 사단이 난 다음날 에피소드를 전해 듣는데 아 정말 이보다 웃긴 스토리는 없어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이후에도 곳곳에서 타코 튜즈데이를 지난 수요일만 되면 에피소드들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미국에서 타코 튜즈데이가 뭐길래 이런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걸까.



타코 튜즈데이엔 타코 하나를 1달러 정도에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요일만 되면 꼭 타코를 먹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휩싸였다. 덕분에 다양한 곳의 타코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생전 처음 '피시 타코'를 먹어보기도 했다. 타코 튜즈데이라는 단어 자체엔 뭔가 묘한 힘이 있었다. 




1.

아, 그리고 이건 처음 타코 튜즈데이를 소개받은 이후 알게 된 사실인데...

'Del Taco'라는 패스트푸드 점에서는 목요일마다 '타코 썰스데이' 이벤트도 열고 있었다.


2.

클래스 메이트들에게 그 사단이 일어난 지 몇 달이 흐른 후 졸업식을 앞둔 그들은 다시 한번 그곳에 입장을 시도했다. 지금쯤이면 시큐리티가 얼굴을 잊었겠지. 하고. 그런데 웬걸. 하필 또 그 시큐리티가, 뿔뿔이 흩어져 입장하는 그들을 모두 잡아 끌어낸 두 번째 사단이 벌어졌다. 와. 그의 직업 전문성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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