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ilani Jan 12. 2019

미키의 Soso Guy List

연애는 나의 부족함을 돌아보는 과정이다

나보다 무려 10살이 더 어린 일본 친구 미키는, 나보다 훨씬 더 연애를 잘하는 친구였다. 그녀는 거침없이 돌진했고, 두려움 없이 부딪혔고, 후회 없이 표현했고, 주변의 눈치 따위 보지 않았으며, 과감히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실패도 많았던 미키는 언제나 나에게 연애에 대한 조언을 구하곤 했는데, 내가 인생 선배는 될 수 있어도 연애만큼은 감히 어떤 조언도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내가 만난 일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미키만큼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는 없었다. 미키는 내가 가진 일본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을 완벽히 뒤바꿔놓은 아이였다. 그만큼 더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여자 친구들에게도, 남자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다만 미키는 연애에 있어 일종의 '금사빠' 스타일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나쁜 남자에게도 잘 걸려들었고, 모든 걸 맞춰주다 금세 제풀에 지치곤 했다. 

미키는 특유의 언어 창조 능력으로 그 나쁜 남자들을 일컬어 'soso guy'라고 칭하며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soso guy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그들의 공통점이 내 눈엔 딱 걸려들었다.

우선 그들은 감언이설에 능하며, 그걸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랑에 순진하고 열정적인 상대를 대상으로 일방적인 희생과 순종을 강요한다. 때로는 자신이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때로는 자신이 남자라는 이유로, 때로는 자신이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내가 미키에게 해줄 조언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천천히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는 시간을 충분히 즐길 것.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연애는 절대 피할 것.



미키는 앞으로는 성숙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만신창이가 되는 연애가 아닌,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미키가 올바른 과정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미키가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그건 soso guy 리스트였다! 거기엔 그동안 만났던 soso guy들의 신상과 연애의 기간, 왜 자신이 그 사람에게 빠졌고, 어떤 스타일의 연애를 했고, 왜 헤어지게 됐는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미키의 이 엉뚱 발랄함에 웃음이 빵 터지고야 말았다. 이런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래서 그녀가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연애를 했으면 좋겠는지 몰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조금은 엉뚱한 이 리스트가 사실은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고 뒤돌아보고 나의 반복되는 실수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하고 적합한 절차라고 말이다.


같은 클래스엔 '료'라고 하는 일본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가 요즘 아이 같지 않게 참 성실하고, 결혼에 대한 건강한 생각과 의지가 있어 보였다. 료와 내가 아끼는 누군가를 이어주고 싶다고 했을 때 옆에 있던 미키가 말했다. "나는 어때?". 그 후에 그둘은 클래스메이트로 자연스레 어울리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인연은 멀리 있지 않았다. 졸업 파티 날 료는 미키의 손을 잡았고, '네가 좋은 것 같다'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미키는 역시나 엉뚱발랄하게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정말? 당신, 나를 좋아하나요?"  



클래스메이트들과 보낸 시간들. 가운데가 미키와 나. 




이전 08화 엘렌 교수의 실질적인 커리어 조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