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나 보던 미국 대학 입성기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 UCI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UCI는 University of California의 Irvine 캠퍼스를 의미한다. 대학을 졸업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해가는 이때 다시 신입생이 되다니. 물론 학부생으로 입학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신입생이라며 UCI는 장장 일주일 간 오리엔테이션 위크를 준비했다.
물론, 미리 알고 있던 정보였긴 하지만, 나를 가장 충격에 빠뜨렸던 건 바로... 이 학교의 마스코트가 '개미핥기'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호랑이, 사자, 독수리 뭐 이런 학교의 위상을 드높여줄 대상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개미핥기인가? 학교의 마스코트가 개미핥기라는 건 뭐랄까... 굉장히... 몰래카메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개미핥기가 맞다. 사실, 개미핥기의 전신샷(?)을 보게 된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개미핥기는 영어로 Anteater. 세상에, 개미핥기를 영어로 외우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개미핥기로 이렇게 글 하나를 쓰게 될 줄도 몰랐고.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대학 스포츠팀과 치어리더, 그리고 마스코트로 대변되는 대학문화들이 굉장히 의미 있게 그려지는데, 나도 그런 문화에 빠져들 수 있겠지 싶은 마음에 내심 기대를 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개미핥기라니... 하아... UCI 역시 응원을 위한 구호와 포즈가 있다. 양 손으로 개미핥기의 모양을 만들고 'Zot! Zot! Zot!'하고 외친다.
2014년도 UCI의 졸업식에 등장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Zot 포즈가 아직까지 회자된다.
내 대학에서도 학교 구호를 외쳐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뒤늦게 학교 구호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고, UCI 출신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기념 사진 포즈는 당연히 정해져 있었으니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실제 내가 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개미핥기는 소스라치게 놀라 육성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무려 실물 크기의 개미핥기가 매 행사 때 참여를 하고 있는데, 양팔엔 근육이 붙어있고, 시선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는 모습으로 허그를 건넨다. 무려 이름도 가지고 있으니, 그는 'Peter'이다.
UCI 학생들끼리의 대화 중 'Peter'의 이름이 거론될 때가 많다. 어느 행사를 갔는데 피터를 만났다. 피터가 어디서 뭘 하는 걸 봤다 등등... 느닷없이 등장한 피터의 이름에 '피터가 누군데?'라고 물으면 '피터 있잖아. 우리의 친구 개미핥기'라는 답이 들려온다.
학교의 마스코트가 개미핥기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사실이 있었으니, 이 마스코트가 100% 학생들의 투표로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진심인가? 아니면 졸업생들이 나 몰라라 하고 가장 웃긴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정하고 학교를 떠나버린 게 아닐까.
나름 귀여운 버전의 피터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실제 외국 출신 신입생들만 개미핥기 마스코트를 보고 놀랄 뿐, 미국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은 '왜? 너무 귀엽잖아?'라고 반문한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도 같고, 자꾸 보니 어느새 익숙해지고 길에서 피터를 만나면 그의 하이파이브에 함께 대응해주기도 한다.
신입생들을 위한 웰컴 페어가 있었다.
다양한 상품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는 로터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런 행운권 추첨에 나름 잘 당첨이 되는지라 잔뜩 기대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번호가 불렸다.
기쁜 맘에 달려 나가 선물을 받고, 많은 친구들의 부러운 눈에 둘러싸여 선물을 오픈했다.
두둥.
그리고,
피터가 등장했다.
anteater 미국식 [ˈæntiːtə(r)]
개미핥기(개미를 핥아먹는 코가 긴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