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학생 비자를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국제운전면허증이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곳에서 6개월 이상 머무를 계획이 있는 친구들은 도착과 동시에 캘리포니아의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행정처리가 워낙 느린 미국이기 때문이다. 일본 출신 슈마는 결국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면허증을 받지 못하는 웃픈 에피소드와 함께 '면허증을 일본으로 보내주면 기념품으로 간직하겠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일찌감치 나는 세 달 동안 뚜벅이로 살 막막하지만 굳은 다짐을 했다.
학교까지의 등하굣길은 버스를 이용했다. 아무래도 매일 아침 같은 시간 버스를 타다 보니 드라이버도 같은 분, 그리고 승객들도 같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버스 안에는 언제나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처럼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가정사도 알게 되었고, 드라이버는 길 건너에서 달려오는 나를 알아보고 기다려 주기도 했다.
배차간격이 짧지는 않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 버스를 타고나면 강의실엔 언제나 내가 1등이었다. 절친이 된 일본 친구 미키가 마지막 날 쓴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언제나 너는 가장 먼저 그곳에 앉아있었어. 항상 먼저 인사해 주고, 아침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
조금 먼 곳으로 이동할 때는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했다.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주부들이거나 했는데 또 동네 주민들이기도 해서 매우 편하고 안전하게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할 때면 언제나 드라이버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주로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에 얼마나 만족해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나에게 적극적으로 이민을 권유하곤 했다.
드라이버들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각기 다른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어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올 때면 그 음악을 소개받곤 했다.
때로는 10분 남짓 짧은 시간, 때로는 1시간가량 긴 시간을 우버나 리프트로 이동하면서 만난 드라이버들과의 대화는 내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 겪었던 또 하나의 추억거리였다.
대부분의 시간은 주로 걷기를 자처했다.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친구들은 동네의 트레일을 소개하며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길이 있어."라고 했다.
우리들의 한강길이나 둘레길처럼 예쁜 모습은 아니었지만, 도로와 신호 없이 끝없이 이어진 길이 있었다.
내가 매일같이 30-40분 워킹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 미국 친구들은 "한국에서의 30분을 여기에서의 30분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라고 경고를 하곤 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뚜벅이였고, 이미 그 길을 걷는 것에 익숙해졌는 걸.
나는 이 길을 따라 40여분을 걸어 내가 가장 좋아했던 쇼핑몰에 가기도 했고, 맛있는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가며 "Hi"라고 인사를 건넸다.
하도 걸어 다닌 탓에 내 피부색은 금세 로컬들과 같아져 '캘리걸'로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살찌기 쉬운 미국에서 오히려 살이 빠져 건강한 몸을 갖게 되었다. 뚜벅이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뚜벅이로 살며 친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Can I get a ride?"라는 영어 표현을 처음 배웠을 땐 이보다 염치없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싶었다. 실제로 이 문장이 빈번히 사용될 만큼 라이드를 부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이곳이어도 친구들에게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했는데, 그건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지극히 한국인스러운 생각이었다.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데려다줄게'라고 먼저 손 내미는 친구들, '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친구들. 때로는 그게 미안해 몰래 나오면 어느새 뒤를 쫓아와 차를 태워주던 친구들이 있었다.
이렇게 도움을 받고 또 내가 감사를 나누고 하며 오히려 친구들과 부쩍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어려워하는 성격인지라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이조차도 새로운 도전이었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는 기회였다.
미국에 도착한 첫 주, 작년에 한국에서 헤어졌던 미국 친구가 캘리포니아에 산다는 사실이 떠올라 연락을 해보았는데 세상에! 바로 옆 동네에 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차가 없어. 나를 만나러 와줄래?"라는 물음에 대니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때 내가 이런 말을 하지 못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내 추억의 반을 잃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