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희로애락의 윷가락을 던지는 윷놀이 한판
무언가의 시작은 그 이전의 ‘무’에서 비롯된다. 마치 탄생이 소멸에서 비롯된다는 역설처럼 시작은 이전 세계를 통과해 도달한 지점이기도 하다. 극단 코너스톤의 연극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작 윤조병, 연출 이철희)는 상여가를 전주곡으로 삼아 무대의 막을 열며 생의 마지막 소멸의 순간에서 연극을 시작한다. 희미한 빛이 낮은 조도로 스며드는 무대 위 어둠 속에서 서로의 등에 손을 얹은 채 나란히 선 배우들은 해탈한 표정으로 “날 때 한 번, 죽을 때도 한 번”이라는 삶의 진실을 읊조린다. 마치 죽음을 맞이한 듯한 이들은 서로의 곁을 지키며 내세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랫말조차 삶을 지나온 자들이 살아 있는 이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인사처럼 들린다.
무에서 유로, 사에서 생으로 향하는 여정의 끝에서야 무대는 환하게 빛난다. 빛으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배우는 막 깨어난 아이처럼 눈을 찌푸리며 관객을 응시한다. 배우들의 발밑에는 흙이 흩어져 있다.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떠오르며 배우들이 흙에서 막 깨어난 존재로 보인다. 죽음에서 시작된 생명을 형상화한 순간이다.
관객석을 향한 배우의 응시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바라보이는 존재’ 임을 자각하게 한다. 극장에서 관객은 보통 ‘보는 사람’으로 인식되기에 ‘바라보이는 경험’은 낯설고 생경하다. 따라서 배우의 응시는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육체를 지닌 실재로서의 자기를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관객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숨 쉬며 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더욱 또렷이 자각하게 된다.
실존의 체험을 관객에게 건네는 연극은 한 바퀴에 끝나는 윷놀이에 인생을 빗대어 삶의 유한함을 전한다. 무대 중앙을 하얗게 밝히는 하이라이트 조명은 윷놀이가 펼쳐지는 멍석이 된다. 멍석은 찰나의 삶을 은유하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의 유한함을 드러낸다. 무대 배경의 분필로 그어진 나무와 윷판도 언제든 지워질 수 있는 삶의 덧없음을 암시한다. 배경과 바닥이 이어지도록 설계된 무대는 하늘과 땅,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연극은 우주의 질서 안에서 생과 사, 존재와 비존재가 순환 관계에 놓여 있음을 담담하게 전한다.
처음과 끝을 어둠으로 잇는 수미상관의 구조도 이러한 극의 메시지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모든 배우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마지막 퇴장자인 석구가 한동안 관객을 바라보다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무대를 떠난다. 이 장면은 탄생과 소멸을 아우르는 순환의 이미지를 강하게 남긴다. 삶이 밝아지는 순간도 죽음으로 저무는 순간도 결국 무에서 비롯되어 무로 돌아간다. 연극은 인간의 삶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잠시 스치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관객에게 일깨운다.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에서는 윷가락 없는 윷놀이를 구현한다. 윷놀이를 다루는 연극에 윷이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윷을 던지고 떨어지는 과정은 오로지 배우의 몸으로만 표현된다. 특히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은 해학을 더하며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허이차!” 하는 구령과 함께 허공으로 윷이 던져지면, 던진 쪽은 동작을 멈추고 상대편은 윷이 놓인 형상을 몸으로 재현한다. 이어서 심판 역할을 맡은 말구가 도, 개, 걸, 윷, 모 중 하나를 외치며 결과를 발표한다. 무대 한쪽에는 실제 윷판이 그려져, 관객은 경기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따라갈 수 있다. 윷이 던져질 때마다 관객은 그 한 수가 승부를 결정지을지,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될지를 숨죽이며 지켜본다.
본래 윷놀이는 확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놀이지만 연극의 구성 의도에 따라 결과는 예정되어 있다. 윷을 던질 때마다 달라지는 놀이 특유의 즉흥성이 무대 위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러나 연극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극적 전개를 위한 재연이 우선되며 그 과정에서 즉흥성은 불가피하게 희생된다.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는 정해진 틀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연극적 형식 속 놀이를 시간의 조절로 변주한다. 슬로 모션을 건듯한 배우의 말과 행동은 결과를 미루는 장치가 되며 그 순간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짧은 멈춤의 순간도 기대감 또는 불안감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말구가 석구의 둘째와 금순의 소식을 전하기 전 신발 끈을 매고 바짓단을 정리하는 장면은 대답을 기다리는 인물들의 과장된 몸짓이웃음을 자아낸다. 이러한 연출은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씨와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물리적으로 누구에게나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른다. 그러나 상황과 감정에 따라 시간의 체감 속도는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어떤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가고 또 어떤 순간은 느리게 흘러가기도 한다. 석구의 아내 연희는 첫째 아이의 죽음 이후 멈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남겨진 삶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연희를 밀어붙인다. 둘째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남편의 말과 함께, 째깍이며 흐르는 초침은 마치 바늘처럼 연희의 가슴을 찔렀을 것이다.
연극은 시간을 잠시 되돌려 연희를 다시 아이가 죽던 그날의 순간으로 데려간다. 조명으로 밝혀진 네모난 멍석 위에 홀로 선 연희는 꾹 눌러온 마음을 터뜨리며 자식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을 외친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은 죽은 아이의 신발 한 짝의 형상을 관객에게 가슴에 각인시킨다. 신발은 실제로 무대에 등장하지 않지만 물성의 부재를 초월하여 관객의 내면에 선명한 이미지를 새긴다. “나는 이리도 너를 알 수 없니?”라는 외침은 연희가 아이를 다시 이해하고 알아갈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비극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
연희는 되돌아간 순간에서 마침내 울음을 쏟아내며 눌러왔던 슬픔을 풀어낸다. 이 짧은 회귀는 연희에게 애도의 기회를 마련하고, 연희의 멈춰 있던 삶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찬찬히 가자. 못 따라가면 지켜보는 것도 상수다.”라는 극 중 대사처럼, 연극은 야속하게 흘러가 버린 시간을 잠시 붙잡고 과거를 되짚어볼 기회를 마련한다.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윷놀이>는 동시대에 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윷놀이가 여전히 필요한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승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에 깊이 매몰되어 있다. 연극은 과거 공동체 안에서 유희와 친목을 위해 즐기던 놀이마저도 승자독식의 논리에 물들 수 있음을 넌지시 비춘다.
윤조병의 원작을 각색한 이번 공연은 산업화 시대의 농업 종사자의 고충을 조명하면서 특히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을 부각한다. 기성세대 농부들인 석구와 봉달은 윷놀이에서도 은근한 예우를 기대하지만 기대와 진태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는 그런 태도에 반발한다. “정 같은 건 옛말”이라며, 애초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규칙부터 명확히 하자고 주장하는 모습은 오늘날 젊은 세대의 인식을 반영한다. “순리”대로 느슨하게 놀이를 즐기려는 기성세대와 원칙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의견이 충돌하며, 등장인물들은 놀이를 시작하기까지도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럼에도 네 인물은 결국 원작의 흐름을 따라 이긴 사람이 농번기 일손을 얻고 진 사람은 그 대가로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기로 합의한다. 이러한 극적 구성은 세대 간의 갈등을 예리하게 보여주면서도 원작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잃지 않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승패의 경계를 흐리는 규칙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경쟁의 논리를 부드럽게 전복하며 승리가 전부가 아님을 시사한다.
극의 결말 부분에서 일행이 개와 걸을 두고 그것이 “곤두박질한 버섯”인지, “살짝 빗겨 쓴 우산”인지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석구와 봉달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윷놀이의 결과는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 장면은 끊임없이 이기고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이기는 게 정말 중요한가”를 되묻는다. 그런 깨달음 앞에서 극 중의 “양보적으로 해가자”는 대사가 유난히 깊게 와닿는다. 나아가 연극은 오늘날 점차 희미해져 가는 공동체 경험의 가치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윷놀이를 무대 위에 소환함으로써 주변 사람들과 함께 유희를 나누는 순간의 소중함을 새롭게 체감하게 한다.
자식들의 희소식을 전해 들은 석구와 봉달이 다급히 놀이를 마무리하려 하지만 말구는 두 사람에게 놀이를 계속하라고 독려한다. 한 판이 끝나기 전에 다음 수가 이어져야 하는 윷놀이처럼 삶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석구와 연희에게 첫째의 죽음은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있지만 둘째의 취직 소식은 부부의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준다. 결국 연극은 삶이 기쁨과 슬픔, 상실과 회복이 교차하는 흐름임을 말한다. 마치 네 개의 윷가락이 매번 다른 형국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인생도 희로애락이 엇갈리며 계속된다.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는 찰나에 불과한 생의 덧없음 속에서도 작은 의미를 길어 올리는 태도야말로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힘임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