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아래 비춰진 동시대 학교의 공간
연극 <원칙> (작 궈융캉, 번역 장희재, 각색 강훈구, 연출 이준우, 2025.05.23.~06.01., 서울연극창작센터)은 동시대 학교의 공간을 간결한 무대와 절제된 연출로 구현한다. 홍콩 희곡을 원작으로 한 <원칙>은 대학 입시, 재단과 교사 간의 권력 관계 등 한국 공교육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며 오늘날 한국의 한 학교를 무대 위에 생생히 재현한다.
<원칙>의 무대 연출은 학교 건물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정교하게 포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중앙 무대를 감싸는 통로는 교실 옆 복도로 사용된다. 대개 저층 구조로 지어진 학교 건물의 특성을 반영해 무대 양쪽에 배치된 계단을 활용한 동선도 인상 깊다. 인물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주치고 측면 무대에 등장해 아래쪽 인물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작품은 극장의 3면을 활용해 최소한의 소품과 무대 장치만으로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무대 위에 직사각형 조명으로 구획된 공간은 교장 연조의 집무실이다. 절차와 매뉴얼이 인쇄된 A4 용지를 연상시키는 이 공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속’이라는 원칙이 필요하다. 교장실은 연조가 학교의 다른 구성원들과 자신 사이에 설정한 경계선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장소이다. 연조는 교장실이라는 고립된 공간 안에서 자신이 설정한 원칙과 절차에 스스로를 가두고 어떤 타협도 하지 않으려 한다. 교감 정구는 그 경계선을 끊임없이 드나들며 교칙에 대한 입장 차이를 조율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연조와 마찰을 빚게 된다.
연조의 원칙 아래에 학교는 마치 교장실의 확장처럼 기능하며 교장의 권위 아래 엄격히 통제된다. 연조는 학업 성취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인물이기에 연조의 관점에서 학교는 대학 입시에 집중할 수 있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공간으로 규정된다. 그 기준에 따라 학생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여러 원칙들이 제정되며 운동장에서 체육복을 입지 않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조차 규제의 대상이 된다. 원칙들은 그 준수 여부에 따라 학생들을 구분하고 학교 내부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만들어낸다. 교장실이 연조와 다른 교내 구성원들을 물리적으로 구획하듯 연조의 학교는 원칙에 반하는 인물을 배제하는 경계의 공간이 된다. 결국 원칙에 이견을 제기한 정구는 전근 대상으로 지목되어 학교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다.
연조는 교내 시간 동안 학생들이 학교 안에만 머물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청소년이 학교 밖 세계에 호기심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아무리 학생들을 교내에 묶어두려 해도 학교를 벗어나려는 충동은 일종의 불가항력처럼 작용한다. 물론 학교는 학생들의 안전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교사들의 감시 아래 위험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연조는 학생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만 머물기를 원하며 마라톤부의 외부 훈련 같은 교외 활동을 통제하려 한다.
반면 연조와 상반된 교육 철학을 지닌 정구는 원칙보다 학생의 자율성을 우선시하며 학교 밖의 세상을 탐색하려는 학생을 제지하지 않는다. 마라톤부 사건 역시 이러한 정구의 관점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한결의 사고는 학교 외부, 그중에서도 정해진 훈련 경로를 벗어난 장소에서 발생한다. <원칙>이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구성했다면 한결의 소식은 측면 무대에서 전달되며 사고가 학교 밖에서 일어났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마라톤부 사건은 학교가 학생을 통제하는 공간일지라도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하며 그 바깥에서는 학생이 실제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칙>은 한 학교 안에서 상반된 교육 철학을 지닌 교장 연조와 교감 정구를 대비시키지만 작품의 시선이 정구에게 기울어 있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정구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을 떠올리게 하는 다소 이상화된 교사로 그려지는 반면 원칙을 중시하는 연조는 학생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학교는 학생의 수만큼 다양한 교육 방식이 공존해야 할 공간이다. 정구의 자유로운 방식이 잘 맞는 학생이 있다면 연조의 엄격한 방식이 더 적합한 학생도 있다. <원칙>은 교사 성일, 학생회장 라엘, 신문부 부장 준 등의 인물을 통해 교장과 교감의 교육관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다른 교사와 학생의 시선으로 확장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연조보다는 정구의 입장에 가까운 인물로 설정되면서 극의 무게 중심은 정구에게만 집중된다.
후반부 학부모 간담회 장면은 정구에게 치우친 작품의 시선이 낳은 결과를 드러낸다. 객석으로 조명이 비치고 관객은 학부모 중 한 사람으로서 학교의 미래를 결정짓는 자리에 초대된다. 이 장면에서 정구는 자신이 학교를 떠나는 것이 옳은지를 관객에게 묻고 거수 투표를 진행한다. 실제 관람한 회차에서는 ‘교감이 학교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90% 이상의 관객이 손을 들었다. 이 투표 결과는 작품이 교장과 교감 양측의 입장을 균형 있게 제시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장과 교감의 갈등은 학교라는 공간을 양분화하지만 동시에 두 사람의 만남은 연조와 정구 각자에게 내적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 각자의 교육 철학을 실천해온 두 사람은 상반된 입장의 동료를 마주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다시 성찰하게 된다. <원칙>은 두 인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내면의 동요를 겪는 순간들을 일부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미세한 징후들이 뚜렷한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극의 전개는 다소 정체된다.
연조는 원칙을 앞세워 학교의 변화를 주도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교사들과 학생들의 이의 제기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극의 말미에서 연조는 사전 약속 없이 라엘과의 대화를 시도하며 조명 밖에 있던 라엘에게 조명 안, 자신의 공간인 교장실로 들어오라고 요청한다. 라엘이 거부하자 조명 아래 홀로 남은 연조는 고개를 떨군 채 피로와 좌절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학부모 간담회 장면에서는 학업 성취 중심의 교육만을 강조하며 기존의 입장을 유지한다. 연조가 극 중 변화의 가능성을 보였음에도 원칙을 고수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도 끝내 제시되지 않는다.
정구 역시 극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서 정구의 전근 문제는 서사의 핵심 축을 이룬다. 연조와의 갈등, 마라톤부 사고, 학생들의 수업 거부, 교사들의 사퇴 등 일련의 사건 속에서 정구의 학교 내 입지는 점차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정구는 당사자임에도 다른 인물들의 행동을 말리거나 중재하는 데에만 머물며 다소 수동적인 입장을 취한다. 극 후반부까지도 전근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사직 의사를 번복하는 데 그친다.
이처럼 두 주요 인물의 변화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극의 후반부는 긴장감을 잃는다. 연조와 정구의 상호작용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말부에서 배드민턴을 함께 치는 장면은 두 사람의 갈등을 결말에 이르러 다급히 봉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관계 변화의 과정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연조가 자신 때문에 변했으니 학교를 떠나겠다’는 정구의 입장 또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결국 정구와 성일은 학교를 떠나고 연조만이 학교에 남는다. 학생의 자율성을 중시하던 교사들이 물러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을 고수하는 교장만이 남았다는 점에서 <원칙>의 결말은 한국 교육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자유로운 학풍을 지향하던 학교가 연조의 원칙 아래 재편되는 모습은 대다수 한국 학교가 처한 현실과도 닮아 있다. 라엘이 공중으로 셔틀콕을 던지는 순간 암전되는 마지막 장면은 밝은 분위기 속에서 연출된다. 하지만 셔틀콕은 결국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자 한 결말은 현실의 무게가 중력처럼 작용하는 교육 현장을 떠올리게 하며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