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한 몸을 향한 증언들
버바텀(verbatim) 연극은 문서나 구술 기록 등 실제 텍스트를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연극의 한 형식이다. 실제 발화를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버바텀 연극은 르포르타주를 넘어 연극만의 형식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마주한다. 연극 <산재일기> (작·연출 이철, 2025.05.09.~05.18.,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사실주의적 재현 대신 최소한의 무대 장치를 활용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산재 사건과 관련된 증언을 연극적으로 재구성한다.
무대는 통계 자료와 작가의 코멘트를 투사하는 스크린과 17개의 의자만으로 구성된 단출한 형태다. 이 의자들은 연극에 등장하는 증언자의 수를 반영하며, 무대 위 유일한 오브제로 극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등받이에 구멍이 뚫린 의자들은 때로는 노동자가 다루는 설비로, 때로는 산재로 희생된 육체를 형상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산재일기>는 무대 위 두 명의 여성 배우가 17명의 증언자를 모두 연기하며 전개된다. 작업복을 연상시키는 청색 점프수트를 입은 이들은 중년 남성 산재 생존자부터 외국인 기업 총수, 20대 청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물을 넘나들며 각기 다른 산업재해에 얽힌 목소리를 무대 위에 재현한다. 배우들은 증언자의 말투와 몸짓을 모방하지만 실제 인물의 외형이나 분위기와는 자연스러운 차이를 보인다. 이로 인해 배우는 당사자라기보다 비당사자로 인식되며, 관객은 배우의 연기에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게 된다. 배우의 연기가 당사자성을 완전히 재현하지 않기에 오히려 기록된 증언 그 자체에 무게가 실린다.
<산재일기>는 배우들이 신체를 활용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배우의 몸짓은 증언 내용을 보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진술의 구체적 맥락과 무관하게 현대무용의 안무처럼 추상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태아 산재 피해자인 황정희 씨의 딸 유다인 양이 장이 움직이지 않는 희귀병을 앓는 상황을 설명할 때, 배우는 강박적으로 어깨를 반복해 움직이며 신체적 고통을 형상화한다.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탈학교 청년의 현실을 증언하는 장면에서는 배우가 의자의 등받이를 몸으로 관통한 채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친다. 이 동작은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청년의 고통과 절박함을 시각적으로
나아가 배우의 몸짓은 산재 피해자의 육체가 실존했음을 환기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신체 언어는 산재 피해자 대부분이 생산직에 종사하며 육체노동을 수행해 온 이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극적 구성은 신체의 언어를 통해 수행성을 드러내는 연극 형식과 산업재해라는 주제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증언 속에만 존재하던 피해자는 배우의 몸짓을 통해 한때 육체를 지닌 실존의 존재로 되살아나며, 산재로 인해 일부 혹은 전부가 사라진 그 몸의 부재를 관객이 또렷하게 체감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배우의 몸을 통해 피해자의 육체성이 환기되는 것과 달리 현실의 기업은 실존했던 피해자의 죽음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기업이 피해자의 죽음을 비가시화하려는 태도는 연극 안에서 ‘산재놀이’라는 형식으로 구현된다. 민변 손익찬 변호사의 강의가 이어지는 동안 배우들은 체스판 위 말을 옮기듯 의자를 이동시키며 기업과 수 싸움을 벌인다. 책임을 피하려 법의 허점을 파고들던 기업들을 상대로 연극 속 증언들은 산재의 개념을 점차 확장시키며 반격을 가한다.
<산재일기>는 산재의 범위를 물리적 절단 사고부터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의 화학물질 노출, 과로, 정신적 질환에까지 확장해 간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2021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고 이선호 씨의 사건에 이른다. <산재일기>는 동시대 청년의 산재 사건을 통해 친구의 죽음 이후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 2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반대하며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왔던 김벼리 씨와 이용탁 씨는 친구의 죽음이 지지해 온 정책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의 입장을 되돌아본다. 이들에게 이선호 씨는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이기 이전에 웃음도 겁도 많던 학창 시절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친구들의 증언은 이선호 씨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다간 청년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관객은 그의 죽음을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현재의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무수히 많은 의자가 어둠 속에서 쓰러진다. 그러나 그중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의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 이선호 씨와 같은 젊은 노동자의 이야기는 서사화되어 사회의 주목을 받아왔고 노동 환경의 변화에도 영향을 끼쳐왔다. 1988년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15세 문송면 군의 경우도 비슷한 반향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회자되는 산재 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산재는 어둠 속에 묻힌 채 잊힌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검은 스크린 속 2025년의 수많은 부고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쳤던 노동자의 죽음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재일기>는 산재 당사자 박용식 씨, 강승구 씨의 이야기로 시작해 비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무대 위에서 산재에 대한 증언을 재현하는 배우들과 그 이야기를 듣는 관객 대부분은 산재의 당사자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산재일기>는 비당사자들의 증언이 전달되는 방식과 그 과정을 주목한다. 산재 인정의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한 것도 연극 속 비당사자들의 목소리였다. 산업재해가 사회 구조에 깊이 뿌리내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변화가 각 개인의 목소리가 모여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비당사자의 역할 역시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 <산재일기>는 관객에게 노동 현장에서 잊힌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고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증언을 이어갈 다음 비당사자가 되어주기를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