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리뷰

흰 벽에 새겨진 기억들 : 오브제로 구현한 역사의 감각적 비극성

by 한겸

연극은 역사적 비극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하나의 방식은 억압과 저항의 주체 사이에 벌어진 대립과 갈등을 서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은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부각하는 다큐멘터리적 접근이다. 하지만 극단 하땅세의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연출 윤시중, 작 김민정)은 이러한 재현의 방식에서 벗어나 오브제를 활용해 역사적 비극을 감각적으로 환기한다.


연출가 윤시중은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이 연극을 관객들이 무거운 부채의식을 안고 찾기보다는, 나들이하듯 극장을 찾아와 자연스럽게 역사를 마주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1] 이러한 기획 의도에서 작품은 5·18 민주화운동을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거시적으로 조명하기보다, 기록되지 않았으나 분명히 존재했을 삶의 조각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포착한다.


연극은 전남도청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다. 초반 장면에서 배우들은 기다란 흰 종이 위에 칼집을 내어 작은 집들을 세운다.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빛고을 광주의 모습이 무대 위에 형상화된다. 이윽고 종이의 끝은 흰 벽이 되고 그 위에 ‘전남도청’이라는 명패가 붙는다. 이 장면은 전남도청이 연극의 주요 무대이자 상징적 장소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복희의 탄생과 성장 과정은 과거에 전남도청에서 칠장이로 일했으며 현재 청소부로 살아가는 경자의 삶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연극은 2024년 라이트하우스 공연을 거치며 기존의 아버지-아들 관계를 어머니-딸 관계로 개작하였다. 싱글맘처럼 보이는 경자의 곁에서 자란 복희에게 전남도청은 삶의 배경이자 정서적 기반이 된다. 첫 이가 빠지는 사소한 통과의례조차 도청 사람들과 함께하며 복희는 공동체 안에서 자란다. 연극은 복희를 마치 전남도청이 품고 길러낸 아이처럼 그려낸다.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한 복희와 인물들의 삶의 궤적은 연극의 핵심 오브제인 종이를 통해 공감각적으로 구현된다. 종이는 복희의 인형에서 도청 직원들의 책상과 컴퓨터, 몸에 두르는 치마, 그리고 빗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처럼 무대 위 종이는 끊임없이 감각적 속성을 전환하며 복희의 세계를 묘사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중심 장치로 기능한다.


종이는 누군가가 그리거나 쓰기 위해 존재한다. 연극에서 종이에 칠하고 그리는 행위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모녀가 품은 삶의 지향성과 내면의 열망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칠장이인 경자가 도청의 벽에 흰색을 칠하는 장면은 마치 딸에게 인생이라는 캔버스를 내어주는 부모의 역할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경자는 어린 복희가 그림을 그리던 벽에 다시 흰 페인트를 덧칠하며 흰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일이지만, 흰 벽 위에 흰색으로 그린 그림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경자의 태도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삶이라는 백지를 내어주면서도, 독재 정권 아래에서는 딸의 자유로운 표현을 온전히 허용할 수 없는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다.


연극에서 계엄군의 진압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신군부의 유혈 진압은 흰 종이 위에 그어진 검은 돌돌이 자국, 방수포 위에 으깨어진 푸르고 붉은 사과들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장면 자체는 전혀 잔인하지 않지만 풋사과와 붉은 사과라는 오브제의 상징을 학습한 관객에게는 사과가 부서지는 이미지와 소리만으로도 폭력의 잔혹함이 충분히 전달된다.


숨죽임만이 허용되던 군부의 억압 속에서 청년 복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이상 안전한 백색 소음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감출 수 없었던 복희는 흰 벽에 벽보를 붙이며 독재정권에 맞선다. 그러나 처음으로 흰 벽에 자신의 색을 남긴 그 순간 복희의 삶은 끝을 맞는다.


복희는 투쟁 중에 경자가 칠한 흰 벽 안으로 삼켜지듯 사라진다. 이 장면은 하얗게 덧칠된 벽이 곧 권력과 억압의 상징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조명은 흰 벽면에 집중되고 배우의 신체는 그 안으로 흡수된다. 이어 벽 위로 떠오른 복희의 얼굴과 그 위에 흩뿌려진 붉은 물감, 처절한 손짓은 순간의 비극을 강렬하게 응축한다. 배우의 표정과 몸짓, 조명의 색채가 맞물리는 찰나의 장면은 관객에게 언어를 초월하는 감각적 충격을 남긴다.


역사에는 하얗게 덧칠되어 지워진 이야기들이 분명 존재해 왔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되었고, 묵살되었으며 끝내 지워졌다. 숱한 죽음 위에 흰 천이 덮였고 많은 이름들이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러나 이야기는 지워지고 가려질 수 있을지라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그 생을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남겨진 이들은 흰 벽이 되고 떠난 이들은 그들의 가슴에 푸른빛 혹은 붉은빛의 선명한 얼룩으로 남는다. 그 얼룩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복희를 보낸 경자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복희와 청년 복희가 시시때때로 교차하며 등장하는 연극의 구조는 복희의 죽음 이후 경자의 기억이 뒤섞이고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연극 속 장면들은 여전히 경자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이다. 결국 떠난 이를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하는 힘은 남은 이들의 기억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아가 개인의 기억은 같은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이들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그렇게 각자의 기억들이 모여 집단의 기억을 형성하고, 마침내 역사로 이어진다.


역사적 비극을 연극으로 재현하는 이유는 우리가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희생을 기억하고 그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서다.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역사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갈래를 이루는 개인의 기억을 감각의 언어로 풀어내고 그 기억에 스민 비극을 조용히 전할 뿐이다.


종이의 재질은 연약하지만 찢어지는 순간의 소리는 그 가벼운 질감을 초월해 강렬한 감각성을 드러낸다. 종이를 문지르고, 찢고, 오려내며 빚어낸 메시지들은 관객의 공감각을 자극하며 감정의 울림을 자아낸다. 바로 여기에 이 연극이 지닌 고유한 연극성이 깃들어 있다.


[1]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2021년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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