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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알이 Jan 27. 2023

그런 날이 있다.

23년 01월의 바리스타

아침부터 무리한 요청이 많았다.


교환권으로 교환이 될 수 없는 상품들을 교환권으로 가져가고 싶다고 무리하게 요구를 해왔고, 안된다는 정중한 거절에도 몇 번이나 같은 요청과 같은 대답을 서로가 마음 상해가며 반복했다.(자꾸 말하면 해줄 것 같았을까?)


어떤 음료든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 쿠폰으로 음료를 가져가서 이미 다 마신 음료를, 더 비싼 음료를 추가 주문하며 아까 처리한 서비스 쿠폰으로 처리하고 싶다며 취소하고 다시 계산해 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예를 들자면 "몇 시간 전에 4천 원 음료를 서비스로 먹었는데, 4천 원 지금 계산할 터이니 더 비싼 6천 원 음료를 공짜로 먹게 해 주세요."의 형태다. 방금 계산을 끝낸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흘러 취식까지 끝난 상태라 안된다고 거절을 하고 있었는데, 계산을 잘못해서 들어온 클레임인 줄 알고 나를 타박하려 뛰어온 언니는 뒤늦게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발길을 돌렸다. 

역시나, 거절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요청을 거듭했고 서로가 마음이 상한 체 상황이 끝났다.


엄동설한 추위를 이기지 못해서는, 볼품없는 건 알지만 패딩조끼를 앞치마 앞에 껴 입고 일을 했다.

따뜻한 레몬차를 주문받아 온수를 받아놓고 긴 막대스푼을 꽂아 두었는데 패딩, 이 몹쓸 두꺼운 옷이 긴 스푼을 눌러버렸나 보다.

눌린 힘에 스푼이 컵을 밀어 철퍼덕하고 미끄러지듯 쏟아졌고, 레몬청이 녹아든 끈적하고도 뜨거운 물이  내 패딩조끼를 거쳐 무릎으로 흘러내려 발등을 찍고 바닥에 흩뿌려졌다.

심지어 사이즈업을 한 그랑데 사이즈다. 약... 470ml 컵을 가득 채운 음료가 쏟아진 것이다.


때마침 대기 고객이 많았던 터라 내 옷가지들과 카페 바닥이 난리 났음에도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진 끈적한 레몬차를 밟아가면서라도 애써 태연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받은 주문을 끝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냉장보관 되어있던 레몬청과 추운 날씨 덕분에 온수는 발등에 낙하하며 식어서 화상은 면했다는 것이다.(시리던 발끝이 따뜻하니.....ㅡ.ㅡ)

당장의 화상은 면했으나 젖은 옷은 점점 싸늘해졌고, 청의 설탕액을 머금은 옷은 뻣뻣하게 굳어갔다. 


이상한 피로감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오는 퇴근길...


마냥 꼬이기만 하는, 그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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