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알이 Apr 20. 2023

취향은 존중하지만 말입니다.

23년 04월의 바리스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듯, 주변에 카페가 넘쳐난다.

용량으로 승부하는 저가커피는 물론이고 프랜차이즈 직영점의 거리제한이 없어진 이후로는 몇 건물 건너마다 별들이 넘쳐난다.


우리 카페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포지션이다. 

용량으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고

가격으로 승부하지도 못하고

유명 브랜드도 아닌.....

카페 입점때와 달리 주변에 많은 카페들이 들어서고 나서는 고객을 많이 잃었다.

저가로, 유명브랜드로, 이리저리....


"커피가 너무 맛있어요. 일부러 다시 왔네요." 

"이 정도 커피맛에 커피가격이 너무 싼 거 아니에요?" 하는 기분 좋은 인사도 있는가 하면

"컵이 뭐 이리 작아?"

"원두가 내 입엔 안맞더라고...." 하는 솔직한 분들도 계셔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자영업 지침을 혼자 되새기곤 한다. 


예고 없던 비가 내리던 날 이른 아침이었다.

입원 환자 보호자 한분이 오셔서는 미처 우산을 챙겨 오지 못했다며 우산을 빌려줄 수 있는지 물어오셨다.

입원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느라 마트 위치를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긴말하지 않고 우산을 빌려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산 잘 썼다며, 고맙다며 젖은 우산을 건네주시는데 다른 한 손에는 별다방 커피가 들려있었다.

'다른 집 커피 사 오시라고 마른 우산 빌려드리고 젖은 우산을 돌려받았네?'

그래도 어쩌랴, 못 본 척... 웃으며 우산을 받아 들었다.


며칠이 지나고, 그때 그 보호자가 오셔서 원두찌꺼기를 좀 얻어 갈 수 있냐 하신다. 평소에 커피를 좋아하시는 환자가 커피를 못 드시는데 향이라도 맡을 수 있게 곁에 좀 두고 싶어서라고.

어차피 원두 찌꺼기는 버리는 것들이라 비닐 한가득 담아 드렸다.


20분? 30분? 지났을까.... 주문이 없던 터라 병원 로비를 쳐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데

원두찌꺼기를 부탁하신 분이 로비문을 열며 들어섰다.

한 손에는 우리가 담아 드린 원두찌꺼기가, 다른 한 손에는 별다방 커피가 들린 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보호자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친다.

'그 카페도 원두찌꺼기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긴 바빠서 부탁하기가 그랬나?'

'우린 놀고있.....'(매출이 저조해서, 하늘이 흐려서, 예민해져서 이러는 거야. 그런 걸 꺼야...)


취향은 존중해 드리지만,

그래도....

이전 03화 상처와 함께 살아가기, 카페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