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
서울대에서도 유명한 개인병원에서도 수술 집도의를 믿는 수밖에 없다 하고
수술집도의는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을 하고, 같은 병원 내과에서는 그냥 살아가라는 말을 하고....
마치 나를 두고 핑퐁게임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내 인생 최고의 꿈은 평범한 삶이다.
병원은 감기나 배탈이 나서 찾아가는 곳일 뿐인,
어릴 적 모든 기억이 병원으로 뒤덮여 있지도 않고
한평생 병원을 드나들며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일들로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나에 대한 타인의 호기심이 내 병력이 아니어도 되는...
사랑에 있어, 내 건강이 장애가 되지 않으며
내 일상과 미래에 있어 건강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10개월 만에 출혈을 찾았다고 맘을 놓은 지
이틀이 되지 않아 또 시작이다.
내 인생은
내게, 왜 이렇게 잔인해야만 할까...
09.04.05
해결책 없이 출혈이 심해지면 금식을 하고, 빈혈이 심해지면 수혈을 하는 일상이 반복이었다.
어쩌면 그 반복이 그들의 해결책이었을까?
무책임하게만 느껴지는 말들 속에서, 내가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반복되는 수혈로 버티는 동생을 보다 못해 언니는 지인을 섭외해 지정헌혈을 해주었고, 후배들은 헌혈을 해서 헌혈증을 건네주고... 많은 이들이 나를 응원해 주었지만 지쳐가는 나를 붙잡기엔 역부족이었고, 동시에 그들이 있었기에 나를 붙잡을 수 있었다.
많이 온 걸까?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어도 될까?
이제 시작이란 말은 하지 말아 줘....
정말.... 힘들어.
지친단 말야....
09.04.16
그러던 중에 "명의"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소화기내과 편을 방송하는데, 채널을 돌리다 말고 우연히 보게 되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냥 살라는 말을 또 듣게 될지언정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찾아가 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도 명의라는데....'라는 기대감이 있었을 것이다.
한번 진료받은 병원은 쉽게 바꾸지 않는 버릇이 있다.
새로운 의사 앞에서
삼십 년 동안의 내 병력을 책외듯 줄줄줄 다시 읊는 것도 싫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 얘길 들으며
결국엔 뻔한 얘기만을 늘어놓는 의사들을 보는 것도 지겹다.
결심을 했다.
다른 의사를 찾아가 보기로...
그러나, 내 결정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고
다된 밥에 재 뿌리는 건 아닐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아무것도 모른 체, 그냥 버티다 쓰러질 때 보다도
빈혈이 얼마나 심해졌는지를 몸의 변화로 느끼며
이 정도면 얼마를 버틸 수 있을지가 계산되는 게
하루하루를 더 잔인하게 만드는 거 같다.
심상찮았던 일주일을 보내고 난 후
결심을 하긴 했는데....
모르겠다. 이게 맞는지...
어떤 기대도 없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분당으로 가면 되는 거란 맘으로
그렇게 찾아가 보자 맘을 먹는데도...
두서없는 생각들만 가득할 뿐이다.
09.06.12
"명의"를 보고 찾아왔다는 말로 첫인사를 하며 진료를 시작했다.
과거 병력과 최근의 상태를 들은 의사는 오래 고생했네, 방법이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라는 말과 함께
같이 한번 잡아봅시다.
하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 당연한 의사의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삶을 껴안아야 한다. 비록 그 포옹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가져다줄지라도 말이다.
삶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 항상 무엇이든 위험을 감수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준비를 하면서 휘청거리고 쓰러지기도 한다. 능력이 있다는 것은 모든 좌절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느긋함은 많은 것을 가져다주지만, 불안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사람들은 최악의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두려움 때문에 자신들이 점점 더 초라해진다는 것을 모른다. 두려움은 모든 것을 빼앗고 빈털터리로 만들어 버린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라.
삶이 얼마나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나 당신을 시험하거든,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고
굽힐 줄 모르는 평정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라.
그 힘에 감명을 받은 운명은 당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당신이 곧 운명의 기운을 움직이는 한 부분이며
그것이 바로 당신의 미래를 좌우하리라.
[영원과 하루 _ 한스 크루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