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이러다 말겠지 했던 위출혈이 1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설마, 1년 가겠어?' 하며 버티던 증상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은 체 시간은 흘러버렸다. 피비린내가 하루 종일 입안을 맴돌 만큼 출혈이 심하다가도 내시경 검사를 위해 금식을 하면 출혈이 멈추기를 반복했다. 금식으로 출혈이 멈추었으니 내시경 검사에서는 당연히 출혈을 찾을 수 없었고 그런 반복이 1년 째였다.
어릴 때 한번 겪어봐서,
그게 출혈인지 알았으면서도 애써 모른척했던 게 1년이 지났다.
내 인생에 또 다른 기로가 되진 않을지,
내 인생을 고민함에 있어
생각지 않았던 방향을 각오해야 하는 건 아닌지...
색채모를 두려움과 방향을 잃은 생각들만 날 둘러싼듯하다.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가슴이 뻐근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빈혈 수치에
양다리 걸쳐놓은 병원에....
헤매고 있는 이 곳이
출구 없는 곳은 아녔으면 좋겠다.
09.06.23
친인척을 비롯한 많은 지인들은 각자가 알고 있는, 또는 사돈에 팔촌에게 전해 들은 명의들을 입에 올리며 가보라고 추천하기에 바빴고 거듭된 의사들의 만류를 경험한 나에게는 한낯 오지랖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때 즈음.... TV 없는 자취생활을 하다 말고 혼자서도 잘 놀기 위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으로 자취방에 TV를 들였다. "결혼 안 하려고 작정을 했니?" 하는 잔소리를 들으며, 큼지막한 걸로 장만했더랬다.
몇 달 버텨보겠다고 받은 수혈은
2주일 만에 거의 다 쏟아낸 듯하고
이렇게 쏟아내다간 30일 진료일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시커먼 피를 보며,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이
더 공포스럽다.
09.07.14
반복되는 출혈로 인해 몸 상태는 나날이 이상해졌다. 아마도 빈혈 때문이었겠지만, 몸이 붓기 시작했고 열감기 앓는 애들 마냥 몸에 열꽃이 피기 시작했다. 역류가 심할 때 보이던 열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열꽃이 보였다. 전신의 열이 느껴지며 열꽃이 필 때면 손마디를 비롯한 전신의 관절이 두서없이 부었다. 이런 증상으로 류마티스 내과를 갔었고 진단까지 받았지만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갔다. 증상이 심할 때 먹으라고 처방받은 진통소염제는 출혈 때문에 먹지도 못한 체, 그냥 아파야만 했다.
비행기를 탄 거 같아...
잠시라도 긴장을 놓치면
휘청거리다 주저앉아 버릴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하루만...
아니, 한나절만 더 버텨줘.
09.08.27
수혈을 받고 버티던 기간이 넉 달에서 두 달로 줄어들더니 이젠 한 달을 못 버텨 수혈을 받아야 할 수준의 출혈이 계속되었다. 체감되는 몸의 상태로 빈혈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고, 다음 진료 예약 날까지 버틸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사는 게 허무해져서 씀씀이가 커졌고, 이렇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지쳐서 인간관계는 편협해져 갔고, 세상을 보는 눈은 삐뚤어지는 듯했다.
금식 후 출혈이 멎은 상태의 내시경으로 출혈점을 찾지 못했었는데
TV 소개를 보고 찾아간 병원에서 출혈점을 찾았다. 물론, 출혈점을 찾았다 해서 지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디에서 출혈이 되고 있는지는 알게 된 것이, 그 당연한 일이 그리도 좋았더랬다.
지혈을 위해 또 입원을 한다.
비록 예정 기간은 3~4일에 불과하지만
내일이면 엄마가 올라오시고,
병원생활을 위한 짐을 꾸렸다.
손을 바꿔보겠다고 여태 4명의 의사들에게 내시경을 받았으나
출혈점을 찾은 의사는 이번이 두 번째다.
가지면 안 될 기대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쓰러져 병원에 들어갈 때 보단 좀 다른 기분이다.
이 생활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어쩜, 벌써 길들여졌을지도 모르는 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왔으면 좋겠다.
Good Luck, to me.....
09.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