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반복되었다. 출혈은 멈추지 앉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를 다니며 책잡히지 않으려 애썼다. 직장동료는 날 이해하지 못했다. 병원을 다니며, 수혈까지 받아가며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미련해 보인다며 쉽게 말을 뱉었다.
나에게 회사생활은 다른 의미였다. 몸이 아프니 회사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를 불식시키고 싶은 자존심으로 시작했고, 평범한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싶은 욕심으로 직장인 신분을 만족했었다.
하지만 출혈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의미가 달라졌다. 출근을 해야만 내 몸에 집중된 모든 신경세포를 흩어 뜨릴 수 있었고, 염려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약 동료의 말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었다면 우울감이 나를 덮쳐 집어삼켰을 것이다.
위출혈이 문제였으므로 수술을 집도한 흉부외과에서 소화기내과로 전과가 되었고,
내시경 시술에도, 금식에도 출혈은 잡히지 않았다. 출혈로 인해 빈혈 수치는 나빠지기만 했고 내시경 검사와 수혈이 반복되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6.0 이하로 떨어질 때쯤이면 수혈을 받아 10.0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시 7.0 이하.
점점 내성이 생겨 6.0이 되어도 버틸만했다. 그러다 수치가 더 떨어지면 수혈을 받아 일상을 이어나가는 일이 쳇바퀴처럼 이어졌다.
지쳐감이 표현될 즈음에, 소화기 내과 선생님께서
"헤모글로빈 수치 5에 내성이 생겨서 아무렇지 않게 사는 환자도 있어요. 낮은 수치도 적응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환자분 수치 정도면 그분보다 나아요. 적응되면 괜찮아 질 거에요."
너무 화가 났다.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이유는 출혈을 멈추고자 함인데, 치료가 아닌 적응을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하다니...
답답한 마음에 흉부외과를 다시 찾았다. 오랜 인연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선생님 앞에서는 내 마음이 솔직해졌다. 꾹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위장의 반란으로 술을 못 마신 지 반년이 넘었다.
모순일 수도 있겠지만, 술 생각은 없는데 취하고 싶어 진다고나 할까?
물론, 취하고 나면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부여잡고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지만
그래도.... 가슴이 시원해질만큼 털어버릴 수만 있다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울 것 같다.
20년 가까이 봐온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선
그렇게 울다왔는데...
몸이 너무 아파, 내 인생이 무서워져선
불 꺼둔 캄캄한 방에서 한참을 울다 잤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얼마나 더 견디면 될까.
끝이 있긴 한 걸까.
난... 잘 버틸 수 있을까....
2009.03.02
소화기내과에서의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은 서울대 본원을 연결해 주셨고, 서울대병원으로 넘어가 진료와 검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내시경을 하려고 누웠는데, 남들 하는 금식시간의 2배 시간을 금식했건만 위속에 음식물이 가득하다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링거를 꽂은 체 몇 시간 동안 병원을 걸으며 운동해서 소화를 시키고 다시 시도하자며 나를 내보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병원을 돌아다닌 후에야 검사대에 누웠는데 결과는 시원찮았다. 조금씩 출혈이 있는 터이니, 이게 출혈인지 아닌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였다. 검사상으로는 상태가 미미해 보이니 의사는 다니던 병원에서 계속 진료받기를 권했다. 답이 없는 환자를 핑퐁게임하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시커먼 어둠 속에 풍덩... 빠진듯한.
하루가 지나고, 오늘이 며칠인지,
넘긴 달력이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에 대한 감각 없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두둥 떠올려져
혼자 떠다니는 느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은 다른 병원에서
옮겨봐야 환자 분만 지쳐요.... 하는 확인사살을 받고 나서
터진 눈물보가 쉽사리 막히지가 않는...
삼십 년 인생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병원들과
그런 내 인생에 대한 짜증과.. 역겨움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표현하지 못할, 그런 서러움과...
내가 날 이기지 못해 화가 나 미칠 거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의 지겨움....
그냥,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2009.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