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운동화에 헐렁한 티셔츠 하나 걸치고 다니다가도 병원을 가는 날이면, 구두도 신어보고 입지 않던 옷들도 꺼내어 입고 단정하게 집을 나서게 된다.
다리가 퉁퉁 부어 구두가 미어터지더라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입고 나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언제나 병원을 가게 되면 원인모를 병들, 원인모를 증상들, 뚜렷한 해결이나 완쾌라는 것도 없는 막연한 이야기를 듣고서 한없이 초라한 마음으로 병원문을 나서게 되더라도, 어디에선가 주저앉아 울게 되더라도 몰골마저 더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은 같잖은 마음이었다.
온 가족이 병원 검사날을 기다리며, 헤모글로빈 수치를 걱정하며, 행여나 내가 스트레스를 더 받을까 내 눈치를 살피며, 내가 무사히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안부전화가 반복되었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갑자기 출혈이 심해져 당장 입원하라는 말이 나왔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져서는 의사마저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계속되는 검사와 회사 눈치 보며 다녀야 하는 병원 외래진료에,
오늘도 출혈이 있지는 않은지, 빈혈이 더 심해지진 않았는지, 숨이 더 차오르진 않는지....
그 어떤 일을 제쳐두고도 내 모든 관심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산타할배가
다량의 헤모글로빈과, 다량의 철분과, 약간의 병원비와 약값을 선물해 주셨으면 좋겠다.
좀 더 인심을 쓰셔 소원까지 들어주어
출혈을 멈추게 해 준다면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산타할배를 받들어 모시겠다.
2008.12.17
일주일 이상 금식으로 출혈부위에 새살이 돋을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선생님의 제안에 입원을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입원을 해서는 병원에서 새해를 맞았다.
링거만으로 영양을 공급받으며 열흘간의 금식을 했지만,
산타할아버지는 선물을 주지 않으셨다.
모두들 돌아간 후의 빈 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어둡게 느껴진다. 빛이 약해져서 아니고 빛줄기에서 내가 멀어진 것 같다.
(....)
간이 나빠서 죽은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가 언제나 들려주곤 하던 이야기가 있다.
"아아! 생각해 보면 사실 나는 언제나 아팠어. 아프지 않을 때는 단지 잊고 있을 때뿐이야. 아프다는 것을 잊고 있는 거지. 내 뱃속에 종기가 생긴 탓이 아니야. 사람은 누구라도 언제나 아픈 거야. 그래서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면 어쩐지 안심이 되는 거지.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 느낌이 들어서 아프고 괴롭지만 안심이 되는 거야.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배가 아팠으니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