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언제부터 새 회사로 출근할 건데?” “네? 저 알아본 회사 없는데요? 일단 쉬고 싶어서요.” “에이,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으니 말해봐.” “아니요. 정말 알아본 데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남에게 관심이 많다. (그들이 보기에) 타당한 이유 없이 갑자기 그만두는 내가 분명 거짓말한다 생각하고는 같이 식사하자며 불러내서는 계속해서 취조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물론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다만 대화 이후의 반응들은 상대가 누구든 결과적으로 매번 같았기에 저런 식사자리에만 갔다 오면 늘 피곤했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기보다는 본인들의 대화 안주거리를 찾으려는 태도. 그래서 진짜 무계획 퇴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오는 그들의 ‘실망감과 흥미 감소’. 그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훈계들을 통해 느껴지는 나에 대한 정의, ‘트랙 이탈자’.
난 밥 사준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잠시 동안만 두 귀를 닫고 묵묵하게 그 시간들을 지나쳤어야만 했었다.
퇴사를 꿈꾸는 사람에게 꼭 말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절대 무계획으로 막무가내 정신으로 임하면 안 된다.
냉정하게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일과 삶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실행에 먼저 옮기고 나서야 깨달았다. 구체적인 자신의 신념과 확신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없었기에, 퇴사자들을 향한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뭔가를 계획하고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마치 시간낭비인 것 같은 생각에 고민이 참 많았다.
코로나 사태 전 2020년 1월 한 신문사에서 직장인의 첫 직장 퇴사율이 87.6%에 달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퇴사 사유는 업무 불만이 15.6%, 연봉 불만이 14.6%,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15.8% 순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10명 중 8명이 한 번은 하는 ‘퇴사’에 대해 회사에 다니는 동안 체계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나는 그저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한 나 자신에 돌아보며 외딴 사막에 홀로 서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면서 마치 컴퓨터의 ‘다시 시작하기’ 기능이 우리의 삶에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꿈꿨었다.
아니.. 잠깐만...
‘다시 시작하기’?
마치 사막에 갇힌 나에게 누군가 낙타를 타고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렇게 된 거 기왕 저질렀으니 이 기세로 쭉 가보자고.
인생에 Reset 버튼이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차라리 내가 그 버튼을 만들어버리자고 말이다. 이렇게 다시 시작하기로 생각하니 곧이어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걸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하여 2016년 연말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가서 개명 신청을 해버렸다. 그리고 잠시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가보라는 친구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생애 첫 나 홀로 해외여행을 급 떠났다.
그때가 2017년 1월 초였는데 이때가 나의 본격적인 터닝포인트의 출발점이자 인생 2막의 시작이라 명명하고 싶다. 아무튼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과거의 모든 것이 초기로 돌아가 있기를 꿈꾸며 그렇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