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일기
내일은 백수로서 보내는 마지막 일요일이고, 그 다음날부터는 정말 신입 회사원이 된다. 입사 전까지 한 달 남짓의 자유시간동안 주로 여행, 글쓰기, 대화를 하면서 보냈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드디어 생긴 것 같아 감사했다. 앞으로 무슨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조금 해소한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 외쳤던 말은 "열심히, 잘 해야된다"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때때로 그 열심과 노력을 증명 받는 것의 재미로 살아온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가 그 정점이었고, 이러한 방식의 동기부여는 유효기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어슴푸레 들기 시작했다. 성취로 느껴지는 기쁨이 줄어들면서 외적보상과 내 만족감이 늘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만의 지속가능한 진짜 동력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단번에 끝나는 고민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머릿속에 큰 물음표를 하나 띄운 채로 평소처럼 지내오다가, 매우 우연적이고 어쩌면 조금 허무하게 물음표를 해소했다.
올해 2월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업 취준생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해야하는데 여전히 정신적으로 방황 중이었다. 증명하듯 살아오는 것에 지쳐서 열정이 잘 안 붙었다. 한창 공채 공고가 쏟아질 때인데 가장 관심 있는 3곳에만 지원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가족과 졸업여행을 명분으로 2주 사이에 홍콩, 마카오, 괌을 다녀왔다. 여행과 여행 사이에 면접 한 번 보고, 다음 면접 일정을 조정하면서 취준생으로서 죄책감을 안 느낄 정도로 준비했다. 늘 자신 없던 면접 전형인데, 살짝 힘 빼고 준비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면접이 즐겁게 느껴졌다. 어느 때보다 자신있게 잘 봤다. 그렇게 하나 둘 합격 소식을 받기 시작했다.
비약으로 들리겠지만 내 취업 비결은 여행이었다. 정말 행복한 여행을 했고, 여행에서 얻은 긍정적인 기운이 면접까지 이어졌다고 믿는다. 열심히 엉덩이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마인드로 이 시기를 보냈다면 면접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여행과 취준을 병행했던 기간 끝에 받은 최종합격 소식은, 나에게 "너가 믿는 길을 자신있게 걸어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타인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증명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패턴에 지쳤다면 그만두어도 된다고, 다른 뜻을 쫓더라도 결과가 자연스레 따라오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용기가 돼주었다.
취준하면서 3개국, 취업하고선 일본, 강화도, 전라도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 3개월 간 여행을 압축적으로 많이 다니면서 이건 평생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뭐 때문에 여행이 행복한지 생각했을 땐, 여행 다니는 내 모습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여행을 정성껏 준비하고, 여행 도중에 몰입하고, 또 그걸 소중히 추억하는 내 행동과 태도들이 좋다.
여행을 만들어주는 것은 꼭 물리적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내 태도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여행을 사치라고 여기고 참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로 남겨두기보다 현실과 여행의 경계를 최대한 희미하게 만들고 싶다. 정말 일상을 여행 다니듯 대할 수 있다면 이게 내 <지속가능한 원동력>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여행자로서의 내 모습은,
1) 외국어를 하는 모습 (오랜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간의 성실함을 체감하는 순간)
2)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 모습
3) 새로운 경험/음식/만남 등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모습
4) 최상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건강에 유의하는 모습
5) 최상의 기분으로 보내기 위해서 옷차림과 화장을 신경 쓰는 모습
6) 새로운 사람에게 호의적이고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터놓는 모습
7)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 장소를 소중히 여기며 눈에 꾹꾹 눌러담고, 사진/글로 기록하는 모습
8) 여행 떠나기 전 자금/시간/여유를 만들기 위해 절제하고 계획하는 모습
9) 주도적으로 계획한 하루 일정을 수행할 생각에 설레어 일찍 눈 뜨는 모습
10) 우연한 행운에 감사하고, 유쾌하지 않는 해프닝도 웃어넘길 수 있는 모습
이틀 뒤부터, 새로운 곳에서의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회사에 첫 출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