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두 달 차
밀도 높은 7월이었다. 입사한 지 두 달 차, 신규입사자임을 명분으로 어느 정도의 protection이 적용되는 기간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음을 매일 더 선명하게 느끼면서, 적당한 즐거움과 긴장감 속에서 지낸 7월이었다.
그동안 인턴으로 여러 조직생활을 찍먹해보면서 이 grace period의 중요함을 여실히 느꼈다. 초반부터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에 집중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초반에 압축적으로 적응비용을 많이 써야겠다고 결심했었다. 한 번 해보면 별 거 아니지만 처음 시도할 때 에너지 소모가 큰 것들, 어차피 언젠가 한 번씩은 꼭 하게 될 실수들/마주하게 될 문제들, 시급하진 않지만 미뤄두면 복리처럼 불어나 나중에 분명 더 힘들어질 것들을 최대한 7월에 죄다 몰아서 경험하기로(저질러보기로..) 했다. 그만큼 정신없고, 힘들고, 때론 이게 맞나 의심하기도 했지만 모두 계획했던 어려움과 실패들이었기에 해낼 만은 했던 것 같다. Grace period를 잘 누릴 수 있게 도와주신 팀에 감사하다.
1. 비즈니스 영어
아무래도 외국계 회사를 다닌다면 영어는 잘하면 잘할수록 좋은 것 같다. 포지션에 따라 유창한 실력이 필수적이지는 않을 수도 있겠으나 어쩌다 영어가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의 업무 효율이나, 해외오피스 동료들과 라포를 쌓는 측면에서나, 중장기적으로 진급/이직을 고려했을 때 언어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고급 영어가 당장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조만간 이게 내 발목을 크게 붙잡겠다 싶었다. 내 실력은 입사할 때 영어 면접을 겨우 통과할, 정말 딱 그 정도였기 때문에 입사하자마자부터 많이 불안했다. 혼자서 자주 overwork를 하는 것도 영어로 된 내용을 흡수하고 비즈니스 영어 메세지를 쓰는 데 배로 시간을 쓰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답답했다.
회사 외의 시간에 최대한 영어를 일상화하려고 했다. 미드, 듀오링고, 헬로톡 같은 걸 하나씩 일상에 끼워넣었다. 가장 효과적이고 재밌었던 건 외국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SNS 계정을 운영하는 거였다. 출퇴근 때마다 수십개의 댓글과 메세지에 답장하면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낮춰갔다. 이걸 시작한 지 딱 한 달이 지나고서부터 글로벌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다행히 지금은 걱정보다 기대감이 큰데, 정말이지 미리 준비 안했다면 패닉이었을 테다!
2. 어필하기
소심한 탓에 평소 무언가를 분명하게 어필하고 주장하는 것을 늘 어려워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연습 중이다.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 하나가 안정화되어서 매니저님께 다른 프로젝트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드렸다. 이 말을 꺼내는 게 맞는지 20번쯤 스스로 되묻고, 어떻게 말씀드릴지 시뮬레이션을 아마 10번쯤 돌린 이후였을 것이다(ㅋㅋ). 감사하게도 상황이 도와줘서 이틀 만에 새로운 프로젝트에 조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경험을 시작으로 조금씩 소심함을 부숴나가보아야지
3. 사과하기
참으로 다양한 실수를 했다. 크게는 목표했던 KPI를 못 맞추기도 했었고, 확인을 덜 하고 잘못된 정보를 외부업체에 전달하거나, 조금 느슨해졌는지 매일 반복하는 업무들에서 자잘한 실수들도 여러 번. 너무 크게 당황하지 않고 발견하자마자 보고하고 해결하고 사과하는 건 잘했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이전만큼 어렵지는 않다. 근데 이제 .. 문제 일으키고 사과하는 것에 익숙해져선 안 된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임을 매일 되새기고 있는 반성기간이다 하하
4. 못하겠다 말하기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소통하려고 노력 중이다. 무리지만 아득바득 어떻게서든 해내려는 마음이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게 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업무시간 마지막 1분 1초까지 내 최대한을 해보겠지만, 그래도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말기. 그리고 매니저님께 미리 visibility를 드리기. 8월 지표가 좋지 않을 것임을 미리 말씀드리니 마음이 편하다.
어디에 적응했다는 것의 의미는 어느 정도의 예측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대강 오늘은, 이번주는, 이번달은 어떨 것이라는 감이 온다면 적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회사에 잘 적응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에 가까운 "글쎄"다.
매일이 새롭고 어제보다 큰 챌린지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늘 맞닦뜨리게 되는 건 똑같지만, 그 어려움들에 휘둘리는 정도가 줄어들고 그 어려움들을 풀어나갈 때 느끼는 재미가 커지고는 있다. 변화가 빠른 조직에서 적응한다는 의미는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휘몰아치는 급류에 몸을 맡기게 될 줄 안다는 걸까.
어쨌건 입사 삼개월 차도 부디 화이팅이다. 이번 달 수습기간을 무사히 마치면 동료랑 큰 자축파티를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