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돌연 의식을 잃을 줄이야, 이건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 없는 시나리오다. 복부 통증과 함께 호흡곤란이 시작되면서 여기가 어디 역인지도 모르는 채로 일단 지하철에서 내렸다. 머릿속에선 세상이 가속도를 붙여가며 빙글빙글 돌고, 눈은 뜨고 있는데 시야가 검정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귀는 멍멍하게 뜨거워지면서 청력이 사라지는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반드시 사람 있는 곳에서 쓰러져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 얼굴을 한 명씩 빤히 쳐다보면서 다음 호흡 하나하나에 집중했지만, 한 켠에는 체념 비스무리한 마음도 공존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순간에 더 이상 내가 뭘 할 수가 없겠다는 무력감과 허탈. 하늘에 맡겨야지 뭐.
응급실을 다녀오고 몸 상태는 금방 호전됐지만 종일 무력감과 불안감이 지속됐다. 1주일에 1-2명씩은 꼭 있을 정도로 흔한 케이스지만 대개 이런 경우 뚜렷한 원인은 없다고 한다. 자율신경계의 이상 현상인 걸로. 근데 왜 나한테 이런 이상한 일이 생기냔 말이다. 라고 생각해봤자 원망할 대상도 없고 해결할 것도 없고 예방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다행히도 이런 감정이 처음은 아니라 놀란 마음 다잡는 것엔 좀 더 능숙해졌다. 약 7년 전 암판정을 받았을 때도, 그 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잃었을 때도 느꼈던 감정이다. 아무리 의료 기술이 좋다고 한들 그 효력이 닿는 것도 운이라는 것, 그래서 그 누구도 무엇도 온전히 믿을 수 없지만 내 몸뚱아리를 지키기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고독감. 나를 지탱해주던 지지기반을 잃었을 때 나도 내 자신을 못 믿겠는 상황에서는 뭘 어떻게 해야할까. 가끔 그런 깊은 무력감이 올라올 땐 읽기 쉬운 철학책을 집어들고 이런저런 글을 끄적이다보면 좀 괜찮아진다. 그래도 살아있는 게 느껴진다.
세상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땐, 삶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하랬다. 이번에는 더 용감하게 살라는 말로 받아들여야지. 어차피 내 인생은, 중환자실 다니던 암 환자였다가 오진으로 밝혀지고 깔끔하게 수술 마친 7년 전부터 매일 매일이 보너스였다. 나에겐 용기, 재미, 약간의 돈만 있으면 된다. 죽음 앞에서 후회되지 않을 선택을 할 용기, 살아있음을 매순간 음미하기 위한 일상적 재미, 그 두가지를 지속하게 해줄 약간의 돈(오늘 응급실 수납을 처음해보니 돈이 '약간' 필요한 게 아닌 것 같긴 했다). 무튼, 건강하자는 말은 너무 무책임한 것 같고, 음.. 용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