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일기
운 좋게도 1순위로 희망하던 외국계 기업에 최종합격했다. 짜릿한 기쁨과 함께 구름에 두둥실 떠다니는 듯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고 싶었으나, 정식 오퍼레터를 받기 전까진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눈물 슥 닦고 바로 처우협의를 해야하는 게 현실이었다. 가진 카드가 많지 않은 신입이지만 어쨌든 처우협의의 기회가 눈 앞에 있고, 연봉에 대한 나름의 기대치가 있지만 또 그것을 고집하기엔 사실 나에게도 간절한 기회라서. 어디까지 어떻게 협상해야 할지, 어떤 기준으로 현명한 선택을 해야할지 모든 것이 어려웠다.
내 가치가 수치화되는 과정을 낱낱이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척을 하고 있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다는 것 자체로 너무 불편하고 괴롭다. 오퍼레터를 받지 못한 채 4일째 이어지고 있는 이 연봉협상 기간의 고통을 글쓰기로 조금이나마 덜어본다.
그동안 크고 작은 선택들을 스스로 해왔을 텐데 왜 유난히 이번 협상이 지난하다고 느껴지는지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인턴으로 경험해왔던 회사들에선 연봉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협상을 시도할 생각조차 안 했었던 거다. 그땐 업무경험이 우선순위라는 나름의 판단 기준이 있기도 했지만 인턴이면 짜여진 임금테이블에 따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사실은 강력했다.
돌아보면 난 그간 이미 누군가가 잘 설계해둔 판에 앉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해왔다. 스스로를 능동적인 사람으로 생각해왔으나, 과연 <제공된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걸 고르는 능력>을 능동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더욱 창의적으로 새로운 판을 짜고 개성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며 살 수 있도록, 더 높은 수준으로 능동성을 개발해야 할 때가 왔다.
어떻게 보면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것에 비해 훨씬 낮은 처우수준을 제안 받은 건 실망스럽고 자존감 깎이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자. 첫 신입 연봉협상의 경험은 주어진 리스트와 yes/no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지 밖에서 새로운 판을 직접 만들어나가보는 시작점이다.
내 노력이 닿는 데까지 협상을 이어나가곤 있지만 사실 이미 마음은 충분히 기울었다. 연봉협상 과정에서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전에 내가 희망하는 신입 포지션에 대한 기준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의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이처럼 어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을 앞으로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더 높은 난이도로 계속해서 등장할 거다. 그때마다 내 스스로를 괴롭힐 만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려면 나만의 기준으로 현명한 선택을 해나가는 근육을 평소에 키워나가야 한다. 어디서 목소리 큰 누군가가 말하는 논리에 단순히 따르는 것과, 외부의 소리를 충분히 흡수한 뒤 나만의 정제과정을 거쳐 결정 내리는 것은 천지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