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글쓰기를 할 테니 넌 개념 쓰기를 하여라
“엄마는 글쓰기를 할 테니 넌 개념 쓰기를 해봐”
“개념 쓰기 안 할 건데! 나 글쓰기에 소질 없어 “
“잘 못한다고 하는 애들이 꼭 비범한 이야기 쓰는 소설가 되던데. 그리고 글쓰기 아니고 수학 개념 쓰기야.”
거실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림책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생각지 못한 문장을 만났을 때 생각한다.
‘오늘 하루는 이 한 줄로 버틸 수 있겠다 ‘
육아서가 아닌 그림책 속에서 만난 살아있는 문장이었기에 그 한 줄의 여파로 우리의 하루는 보완되고 있었다. 그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이틀이 다가왔고, 그렇게 한 달, 일 년, 수년이 지났다. 모자라거나 부족한 부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10년이 참 금방 지나갔다.
책을 통해 보완하며 버티는 날들이 많았고, 책을 읽다 보니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동화책을 읽을 때면 이 정도 동화책은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육아 10년 차쯤에 다시 읽게 된 육아서를 볼 때면 이 정도 육아서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분들의 노고를 무시하는 마음은 아니지만 어떨 땐 나의 경험이 더 풍부해 보이기도 했다.
성별이 다른 두 아이는 책을 보는 취향이 잡곡밥과 나물 비빔밥 같다. 잡곡밥 아이는 책 하나로도 영양가 있는 시간을 만들고 비빔밥 아이는 심심하고 허전하긴 하지만 풍부한 영양소를 공급하고 있다. 잡곡밥엔 다양한 반찬이 필요하고 비빔밥엔 매운 고추장이 필요하다. 엄마는 인스턴트 같고 아빠는 단식 중이다. 인스턴트 같은 엄마는 독서만으론 세계 확장을 할 수 없다 생각하고 한 걸음 더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먼저 학업에 뛰어든 큰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글쓰기를 할 테니 넌 개념 쓰기를 하자’
개념 쓰기를 시작한 건 고학년이지만 학원을 가지 않는 큰 아이의 특수한 케이스였고 그래서 우리에겐 여유 시간이 정말 많았다. 정말 중요한 이유는 개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확인하고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다독하는 아이답게 처음 개념서를 읽을 때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최수일 선생님은 아이의 수학 개념을 알려주는 개인 과외 선생님으로 활약했다.
책을 읽고 개념을 쓰며 하루를 꽉 채워 보내는 아이를 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1:인스턴트 음식처럼 책을 읽는 내가 10년 후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과연 심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2:우리가 시작한 책육아의 목표가 단순히 책을 읽기만 하는 게 아니었을 텐데. 3:아이들은 순수하고 단순해서 책을 잡으면 몰입하는 힘이 대단하다. 반해 나는 대충 읽고 넘어가면 나중엔 아이들이 추천해 주는 책은 어려워서 못 읽는 날도 올까. 4:간극이 벌어지게 되면 같은 책을 읽고 대화나누기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거나 다른 책을 읽고 같은 관점을 발견하는 걸 하고 싶었는데, 내가 대충 읽고 만 책들이 쌓일수록 우리 사이의 틈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쓸 때 위치를 알려주는 커서처럼 아이들이 읽으려고 꺼내놓은 책들은 지금 나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듯했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많은 이유들 중 또 한 번 흑심이 튀어나왔다. 수행평가와 논술대비를 위한 선행. 교과는 선생 하지 않았지만 글쓰기는 선행하고 싶었다. 살면서 필요한 수많은 글쓰기 앞에서 글쓰기 선행이라는 건 엄청나게 매력적인 공부로 다가왔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글쓰기를 내가 먼저 해보겠다는 의도였다. 먼저 경험해 보고 이끌어주고 싶었다. 10년 전 시작했던 책육아가 지금의 치트키가 되었듯이 글쓰기 10년이면 아이들의 자존감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거라 상상하며. 나의 남은 인생 전체를 글쓰기에 걸어도 좋다며 호기롭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독서만 하던 삶에서 글쓰기로 영역을 확장한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글쓰기의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짜임새 있게 지속적으로 쓰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들을 모으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