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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르메 Jan 06. 2023

엄마의 흑심

엄마는 책을 읽을 테니 넌 개념서를 읽거라

“개념서 어디 있어요?”

“책장에 없어? “

“없는데,,”

“마지막에 어디서 읽었어?”

“…아~맞다!”




책을 읽었다. 방법과 순서가 나와있는 경로가 필요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단조로운 상태로 지탱하기 위해 좋은 방법이었다. 꼬여버린 상황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읽기도 했다. 상황에 파묻히게 될 것만 같아 기대기 시작한 것이 책이었다.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던 생각들이 서로에게 고리를 걸어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몇 달간 책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애태우던 고민들이 빠져나오기도 했다. 육아의 세계는 참으로 다양한 고민들을 만나는 여행지다.


크고 작은 고민들이 내 안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느끼는 감동들. 머릿속 얽힌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들. 모두 책을 통해 찾는 법을 배웠다. 책이 인생선배쯤 되는 건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육아서는 인생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였지만 인생선배는 아니었다. 육아서는 아무런 대가나 조건 없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가득한 세계였다. 부모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삶의 의미와 철학을 찾아야 했다.


동화책과 그림책은 낯선 타국의 어느 여행지에서 만난 한글 간판 같은 존재였다. 예상치 못한 그림책에서 생각하지 못한 문장을 만났을 때, 우리의 하루는 그 한 줄 문장으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견디며 생각하는 하루가 또 생겼다.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제와 조금 다른 이튿날이 다가왔다. 그런 날들을 하루하루 모았다. 아니 모였다.


육아서의 경계밖으로 빠져나오니 동화책에서도 철학이 보이고 사회문제가 보였다. 그럴수록 마음을 보듬어 주는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서스름 없이 세상 모든 동화책을 받아들였고 다음단계 준비를 했고 이제는 함께 성장할 용기가 생겼다. 동화책을 읽고 나니 교육서가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육아서의 다음 단계는 교육서였나보다. 우리의 앞에 다정하고 친절하게 손짓하는 교육서가 있었다.


교육서에서 제일 와닿았던 말은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는 것이었다. 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던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를 교육서에서 발견했다. 동화책으로 시작한 책 읽기 경험은 교육서까지 넘어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교육서를 독파하기 시작했고, 교육서에서 한줄기 빛을 만났다. 실제적 대상을 희미하게나마 찾았다.


혼공 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혼공 하는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로 클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의존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몰랐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대상을 두루 생각하고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사진출처_픽사베이

아이들은 이제 개념서를 책 읽듯이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다양한 목적 중에 유일한 흑심이라면 개념서 읽는 아이를 만들자는 거였다.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게 된다는 이치를 수학 개념서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개념서를 통해서 알게 된 경로가 아이들의 하루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길 바랐다. 이런 연습들이 자기의 결심에 따라 움직이는 아이가 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거라 생각했다. 오늘도 개념서 읽는 아이 옆에서 글을 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결국은 이렇게 쓰는 사람이 되려고 그동안 그렇게 읽었던 것 같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어렵다.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더 어렵게 다가온다. 마음과 현실사이 어디쯤에는 아이들의 작은 희망들이 떠다닌다. 가능성이 자라고, 희망이 커지고 있는 아이들 옆에서 엄마로서 할 일은 함께 읽어나가는 일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내용을 정리하게 되었고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


책 읽기를 하다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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