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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르메 Dec 29. 2022

나는 백화점 대신 서점에 간다

신상 쇼핑할 만큼 했다. 이제 신간 쇼핑하자.

Q : 쇼핑 좀 하시나요?

A : 쇼핑 잘합니다. 인터넷 최저가 검색도 잘하고요.

Q : 쇼핑 좋아하시나요?

A : 일주일간 백화점에 갇혀 지내고 싶어요.

Q : 쇼핑 전문가이신가요?

A : 쇼핑몰 운영도 했었고요, 쇼핑하는 것부터 쇼핑하는 고객 상대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니 상당히 고수라고 할 수 있어요.




인생의 첫 번째 주체적인 놀이. 쇼핑을 향해 달리던 21살.

그 당시 대학 생활비의 전부는 쇼핑하는데 썼던…(왜 그랬을까..)

동기들과 놀다가도 심심하면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던 말,

“옷 사러 가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며 본격적인 쇼핑 시동이 걸렸다.

과거에 후회되는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칼에 대답할 수 있다.

쇼핑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


뭔가를 사야 안정되었던 지난 삶.

사는 것이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주는 줄 알았나 보다.

아무리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사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너무 많이 사들였다.

연애할 때도 데이트의 절반은 쇼핑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쇼핑메이트와 결혼했다.

쇼핑하는 인간으로 살면서 참 재미있게 쇼핑 데이트를 했다.

토론하는 데이트였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 와서? ㅋㅋ (우리 지금이라도 토론데이트 하자! 내가 말 안 끊어먹고 잘 들어줄게)



명품백을 이기는 명품 습관, 명품 취미 생활을 향유하고 있다. 명품백을 좋아한다. 쇼핑 좀 해본 여자들은 안다. 명품백은 예쁘다. 어떤 옷에 걸쳐도 예쁘니 좋아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예뻐 보이는 것에 투자하고 사랑했다. 장기간 하다 보니 알았다.

'명품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클리셰적인 멘트지만 그간 도전해 본 적은 없다는 것)


백화점 대신 서점가는 취미가 생기고 난 후, 혼자 백화점을 가본 적이 없다. 쇼핑하는 동안의 그 시간이 책 한 권 더 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그 시간은 더더욱 소중해진다. 쇼핑은 회피하되 나의 그릇을 키우는데 집중해야 하는 운명적인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가끔 필요에 의해 백화점을 가긴 하지만 예전의 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백화점 대신 서점 가는 사람들은 안다. 신상 디자인보다 신간 표지가 더 매력적이라는 걸. 보고싶은 책들을 다 못가지고 오는 집에 살아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이사에 대한 고민을 해봤을 거라는거. 서점입구에서 느껴지는 책의 유혹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다 보니 집 앞에 대형 서점이 생기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는 소원 아닌 소원이 생겼다.


책 표지의 컬러감과 책 속 한 장 한 장의 종이 질감이 더 궁금해졌다. 다 같은 종이가 아니다. 책의 무게도 다 다르다. 외출 시 오늘의 코디에 맞춰 가방을 고르듯이 도착 장소의 종류에 따라 책을 골라 나간다. 걷는 동선이 많은 약속장소엔 가벼운 책을 가져가야 하고 집 앞에 나갈 땐 무거운 책도 허용가능하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책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무거우면 최대한 작고 가벼운 책을 챙겨 들기도 한다.


책과 함께한 시간들이 쌓이면 어떤 지층이 쌓이게 될지 기대된다. 얼마큼 단단한 두께의 지층이 쌓이게 될지는 그 시간을 얼마큼 가치 있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수많은 자기 게발서 속의 강연자들이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시간을 보내지 말라.




불안한 어른 두 명으로 시작해 성공한 완전체라는 걸 경험해보고 싶어서 육아현장으로 뛰어든 지금은

"집에서 뭐 해?"

"애들 보내고 나면 뭐 해?"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등등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 외에 다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잘 없다.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보는 이 말은 4인 구성원중 3인이 사회생활 하러 나갔을 때 혼자 뭐 하냐는 질문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발짝 떨어져 생활한 지 꽤 오래되어 나타나는 결과쯤일까.


"집에서 책봐~"

에 동의해줄 주변인이 많지 않아 책 본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 책 읽기에 투자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책 메이트를 만나기 전까진 혼자 공감하고 혼자 생각하고 사색하는 삶을 영위해야 할 것 같다.


p.s : 그러나, 2022년 말에 책 읽고 글 쓰는 활동을 함께 할 친구들이 생겨서 외롭지 않게 이 시간을 걸어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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