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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르메 Dec 22. 2022

학원 대신 책, 과외비 대신 책값

아이 덕분에 성장한다

이렇게 된 이상 남편의 외벌이는 지속되어야 한다.


엄마, 아빠만 보고 자라는 아이 둘을 책의 바다에서 놀게 하려면 눈떠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이 책에 둘러싸여 있는 환경 이어야 한다. 책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초특급 커리어 우먼일수록 유리하다.라고 믿었다. 이 믿음이 얼마나 가성비 떨어지는 건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을 위주로 뇌가 가동되는 일중독자에겐 일과 육아, 이 두 가지를 병행하기 어려웠다.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었다. 그래. 육아를 일처럼 하자. 남편을 일터의 최전선으로 보내고 육아의 여정으로 뛰어들었다.




우린 각자의 구역에서 영원한 1번 주자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에 접속 가능한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에겐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커리어 없이도 살아지는구나 싶었다. 때때로 원하지 않는 삶도 받아들이게 하는 곳이 육아현장이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쌓고 있는 커리어는 내가 아닌 사장의 커리어라는 걸. 당장의 월급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이 시간은 멀리뛰기하기 위한 준비라는 걸. 엄마 이기 때문에 알았다. 책이 있는 삶에 내 아이들이 포함되는 것에 의미부여 하기로 했다.

책이 있는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동기부여는 다양하다. 그중 아이들이 책 속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작은아이의 하루는 개성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배우는 누나의 실과책을 읽으며 미소를 띠는 낭만적인 아이다. 가끔 미간에 힘을 주기도 한다. 일을 하기 위한 기초 능력을 익히는 실과책을 읽는 아이를 보며 처음엔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는 줄 알았다. 무슨 책이 저리도 즐거울까 싶은 마음에 책 표지를 보던 그날은 아이 주변으로 꽃가루가 뿌려지는 잔상이 보이기도 했다. 아이와 교과서를 몇 번씩 번갈아보며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내던 그날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교과서가 제일 재미있어요”가 내 아이가 될줄 몰랐기에 한장의 컬러 사진으로 출력을 완료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실과책 읽어 보면 교과서가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긴 하다. 책으로 큰 둘째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누구보다 특별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아이를 보며 ‘지적질 금지‘의 삶을 살아가 다짐했다. 저 아인 앞으로도 지금처럼 훌륭하게 자랄거라고. 흩뿌려진 꽃가루를 주섬 주섬 담으며 생각했다. 오늘도 아이 덕분에 성장한다.




“엄마, 누나 실과책 어디 있어요?”

“왜?”

“실과책이 재미있어요. 읽고 싶은데.. 안 보여요”

(-부지런히 안버리길 잘했다)

“그런데,, 오~~ 아들. 엄마한테 참 멋지게 말하는데~“

어느 날처럼 실과책을 찾던 둘째가 갑자기 엄마게에 존대를 하던 날이었다. 갑자기 무슨 상황인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엄마에게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why 명심보감을 읽었는데, 나보다 윗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하는 거래요. “

“오~멋지다. “ (사실 대사처럼 더 멋진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냥 멋지다는 말 밖에 생각이 안나서 아직도 아쉽다)


어쨋든 우린 둘째아이의 존대말에 대해 감격하고 또 감격했다. 첫째 아이도, 엄마인 나도 너무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관경을 경험한 그날을 잊지 못한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아이가 책을 흡수하는 속도를 보며 놀랐고,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다짐하던 날이었다. 둘째 아이처럼 멋지게 책 읽어본 경험 있을까 궁금한 마음을 품고 호들갑 떨며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큰 의미 부여하지 않던 반응을 보였던 남편도 분명 뿌듯했으리라 믿는다.


책값으로 수백을 긁던 날에 이런 큰 감동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엄마 자존감에 힘을 실어준 둘째 아이의 그날을 이렇게 기록하게되니 감회가 새롭다. 학원 대신 책을 읽는 아이들에겐 책이 과외 선생님이고 인생선배쯤 된다. 이런 맛으로 책 읽는 아이를 키우는 거고, 이렇게 된 이상 남편의 외벌이는 계속되어야 한다.


”얘들아, 학원비 모아서 자금 만들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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