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없으면 밥 못 먹는 아이들
"밥 먹을 땐 책 내려놓자"
주섬주섬 테이블 밖으로 책을 밀어냈다. 아빠가 식탁 위에서 처음 꺼낸말에 큰아이는 보던 책을 덮었다. 그때부터 큰아이의 시선은 갈 곳을 잃었다. 책이 있어야 밥을 먹는 아인데, 눈앞에 책이 없다. 읽을거리, 볼거리를 찾아 헤매는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큰아이의 삼각형 눈썹만 남아 있던 주말 저녁이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입맛대로, 엄마의 취향대로 자란다는 걸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맛있는 밥보다 책 읽는 시간이 더 군침 돈다. 적당한 한 끼를 위해 대충 차린 저녁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아이들이 마지막 밥 한 톨까지 야무지게 싹싹 먹는 모습 대신 책을 쥐고 있는 아이들을 봤다. 밥 먹는 동안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었기에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인성 교육은 밥 먹는 식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양육 전문가들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래도 내 방법을 좀만 더 고수해볼래.'
'한 사람이 10년 넘게 육아하면 육아 전문가 맞는 거죠'
책에 대해 진심이다. 아이들이 밥 먹을 때 책 보는 게 뭐 어때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관대한 식탁 위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밥시간이 사색적이다. 좋아하는 밥을 먹을 때 좋아하는 책을 보는 일은 밥 먹는 일을 더 즐거운 일로 만드는 법이다. 밥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덜해서 일까. 밥 먹는 일에 더 애를 써야 한다는 말에는 아직 동의하지 못했다. 테이블 위 책 육아가 가능했던 이유는 책이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은 아이가 테이블 위에 만화책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큰 아이로부터 시작된 테이블 위 책 육아는 작은아이에게로 옮겨갔다. 뭐든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있어야 하는 누나를 보며 자란 동생은 이제 테이블 위 책 육아를 주도하는 것 같다. 태어나보니 아는 사람의 3분의 2가 책을 봤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책을 보는 줄 알았을 둘째. 그렇게 책으로 둘러 쌓인 둘째의 아침은 언제나 만화책으로 시작한다.
엄마 : "얘들아 밥 먹고 할교 갈 준비 하자~"
첫째 : "동생아, 무슨 책이 재미있어??"
둘째 : "카카오프렌즈 인도!"
첫째 : "없잖아!!!!"
둘째 : "그러면 싱가포르."
첫째 : "싱가포르 말고 없어?"
둘째 : "그럼 읽지 말던가."
-흔한 남매의 흔한 대화-
밥 먹는 식탁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했던 건 책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고 계획에도 없었다. 그저 두 아이 모두 사색적인 밥 시간이 좋은거 아닐까. 두 아이가 만화책 2권을 펼쳐놓으면 6인용 대형 테이블이 평범한 4인용으로 바뀐다. 스마트폰 쳐다보며 밥 먹는 어른들에겐 책 보는 아이들이 무례해 보일 수도 있다. 직접 따라 해 보고 알았다. 밥먹으며 책 보는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만화책 보면서 밥 먹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었다.
"밥 먹을 땐 책 내려놓자"
아빠의 메아리는 아직 허공에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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