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을 견디는 법
빨래
-자작시-
유리창을 열면 더운 바람이 먼저 들어온다
여름 햇빛은 걸음이 느리다.
아들 냄새나는 베갯잇을 벗겨낸다
이불깔개를 걷어낸다
속살을 드러낸 베개 다섯 개 나란히 누워 있다
발로 지근지근 밟아 땟물을 뺀다
손 붙인 김에 화장실청소를 한다
빨랫대 두 개를 펴고 이불을 널었다
해바라기를 한다.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흐른다.
눈에 땀이 들어간다 손등으로 한번 훔치고 반복한다
다섯 식구 이불을 빨고 빨랫대에 나란히 눕혔다.
남아 있는 물을 짜려면 양쪽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쥐어 짜야한다
똑같은 힘으로 비틀어 짜다 보면 언제 끝을 내야 할지 알 수 있다
여름 햇살이 이불을 말린다.
속 시끄러울 때 이불 빨래를 한다
손으로 박박 밀고 발로 지근지근 밟는다
빨래방망이를 사러 가야겠다
실컷 두들겨 빨아야 깨끗해지려나
탁탁 털어내고 가지런히 널었다
비비 꼬인 내장도 함께 널었다
여름 햇빛은 쉬지 않고 내리쬐고
반나절도 안 돼서 속이 저절로 펴진다.
1994년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기억되는 해였다. 아스팔트에서 계란프라이를 하는 기자의 모습이 뉴스에 나왔다.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밖에 있었다. 그때 나는 고3이었다. 선풍기 세 개가 교실 천장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교복치마를 팬티라인까지 걷어 올리고 앞머리에 똑딱 핀을 낀 채 49명의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제각각의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더위를 참지 못한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고무대야에 찬물을 받아 와서는 발을 담갔다.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도 밤 10시가 되도록 아무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운동장을 가로질러 매점으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먹을 때는 시원해도 돌아서면 갈증이 났다. 수능이 100일 남았을 때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귀밑 3cm로 잘랐다. 제법 고3 같다고 생각했다.
1994년 아빠는 감자농사를 크게 벌였다. 3만 평의 땅을 빌어 감자를 심었다. 일요일이면 감자밭에 가야 했다. 고3이란 건 아빠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가진 돈을 다 털어놓았던 아빠에게 중요한 건 큰딸이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올해 감자값이 얼마냐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여름 내내 감자밭에서 살았다. 토요일 밤이 되면 내일 비가 오게 해 주세요 빌었다. 일요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새벽 4시에 오리온자리가 제일 잘 보인다.
엄마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일어났다. 투덜거리는 나에게 일복과 양말을 건네주고 나서 엄마는 아침밥을 차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엄마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때 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3이 일요일에 공부하지 않고 밭에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공부를 잘하진 않았지만 고3이라는 타이틀에 진심이었다.
얼마 전에 고2를 둔 엄마를 만났는데 요즘 고등학생들 중에 자퇴를 하는 학생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고1 첫 중간고사를 보자마자 자퇴를 하거나 고2 때 자퇴를 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내신관리를 위해서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다. 의대를 가려면 1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시험을 망쳤기 때문에 1년 더 공부하고 다시 학교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예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 우리는 그런 언니들을 1년 꿇었다고 했다. 대개 공부에 관심이 없는 대신 앞머리를 잔뜩 세우거나 교복치마를 짧게 입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은 멀쩡한 학생들이 단지 성적 때문에 자퇴를 한다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물론 성적은 중요하다. 고등학생들에게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 먹히지 않는다. 정해진 틀 안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보이는 세상이라곤 모의고사 성적밖에 없다.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나도 그랬다. 성적표에 울고 웃었다. 아니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 행운의 여신의 손짓에 생각보다 수능점수가 30점이 올랐다는 말은 그야말로 로또와도 같은 말이었다. 성적표는 노력에 비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것보다 더 큰 결과를 기대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역사상 최고 덥다는 1994년 여름을 교실에서 보냈다.
햇빛이 좋은 날에는 빨래를 널고 싶다.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가 뽀송뽀송하긴 하지만 햇빛냄새가 나는 것만큼 포근한 느낌은 없다. 이불빨래는 뭐니 뭐니 해도 해바라기를 해야 한다. 기준치가 너무 낮은 나는 이 정도쯤은 하는 마음으로 여름을 견뎌낸다. 1994년 여름 고3이었고, 일요일마다 얼굴이 익을 것 같은 감자밭에서 일을 했다. 그래서 견딘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래도 지금이 낫다고 생각하며 견뎌낸다.
햇볕에 하루종일 말리면 이불이 빳빳해진다. 걷으면서 코를 묻고 햇빛냄새를 맡는다. 바삭하게 마른 이불을 덮고 잠을 자면 꿈도 꾸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