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배가 자주 아팠다. 많이 먹으면 설사를 했고, 안 먹으면 며칠동안 변비에 시달렸다. 엄마는 배가 아프다고 하면 염소똥같은 약을 주거나 따뜻한 꿀물을 타 주었다. 병원은 진짜 아파야 가는 곳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
우리 집 화장실에는 문이 없었다. 집에서 나와 마당을 가로지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밖 거리를 지나 돌담을 따라 걸어가면 계단 세 개 위에 아빠가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아빠는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변기를 안쪽에 설치했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문을 달아놓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화장실은 바닥보다 높이 있었다. 우리 집은 길 바로 옆에 있었다. 요즘은 길가에 있는 집을 높이 쳐 주지만 오래 전 우리 동네에서 잘 사는 집들은 모두 굽이굽이 숨어 있었다. 골목 안이 모두 그 사람들의 집이었다.
우리 집은 큰길 바로 옆에 있었고 대문이 없었으며 돌담이 낮았다. 집 밖에 나가면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굳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입문을 들먹이지 않아도 한창 예민한 나이의 여자 아이가 살아가기에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사람들이 수시로 집에 드나들었고 아무나 화장실을 사용했다. 큰길에는 버스가 다녔다. 화장실에 갈 때도 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화장실에 앉을 때도 버스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동네 남자아이들이었다.
앞집에 사는 성배는 나보다 한 살 아래 남자아이였다. 여자만 5명을 낳고 얻은 아들이었는데 성배네 집은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이 층 양옥집이었다. 크고 넓은 집을 놔두고 성배는 작은 슬레트 집에 자주 놀러 왔다. 내가 만약 성배라면 절대 이런 집에 안 올 텐데. 또 성배네 집 옆에는 만보오빠가 살았는데 나보다 한 살 많았다. 성배는 만보오빠와 어울려 다녔다. 또 육거리에는 철희가 살았고, 이철이가 살았다.
아이들은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좁은 골목에서 구슬치기나 자치기를 했다. 골목에서 놀다가 고개를 들어 보면 우리 집 화장실 옆 쪽이 보였는데 작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골목에서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들리면 가만히 있던 배가 자꾸 아파왔다. 참으려고 하면 할수록 배는 요동을 쳤다. 참다 참다 화장실을 갈 때는 담벼락에 맞춰 몸을 숙였다. 화장실까지 가는 세 개의 계단을 오를 때 나는 점점 허리를 숙여 화장실에 들어갔다.
어느 날 남자아이들이 내가 화장실을 가는 걸 알고 담을 힐끔거렸다. 나는 안 보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그 날 이후 죽을 만큼 배가 아파도 절대 낮에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밤에 손전등을 들고 동생과 함께 화장실에 갔다. 그래서일까? 나는 자주 배가 아팠다.
배가 아프면 부엌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방의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서 배를 바닥에 붙이고 눕는다. 부뚜막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는 고양이처럼.
저녁 내내 두 개의 아궁이에서는 물을 데우고 국을 끓였다. 부엌이 요란할수록 방바닥은 뜨끈해진다. 바닥은 이미 갈색으로 탄 지 오래다. 그대로 누우면 너무 뜨겁다. 두꺼운 요를 깔고 이불을 덮는다. 처음에는 차가운 것 같지만 점점 몸이 뜨거워진다. 그 정도면 적당하다. 하지만 나는 가끔은 배가 너무 뜨거워서 깜짝 놀랄 만큼 뜨거운 바닥도 좋아했다. 처음에는 앗.뜨거워.. 하다가도 점점 편안해진다.
난리 법석이던 뱃속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된다. 그렇게 아랫목에 가만히 배를 대고 있으면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열세 살 여자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곳에서 아, 시원하다를 외치는 애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가끔 몸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힘이 들 때가 있다. 뚜렷한 이유가 있을 때는 차라리 그 이유를 없애면 되는 거라 쉽다. 문제는 아무 이유 없이 온몸이 축 가라앉는 그 순간이다.
그럴 때면 아픈 배를 바닥에 붙이고 누워 있던 때를 생각한다. 작은 방. 마루 건너 안방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윙윙 울리고, 가끔 동생들의 싸우는 소리도 들리고, 엄마 아빠의 뭔가 심각한 대화도 들려오는데, 하지만 나는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뜨거운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있던 그때.
화장실이 집 안에 있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지금. 바닥은 굳이 불을 때지 않아도 언제나 따뜻하고, 아무 문제도 없는데 나는 가끔 그때가 사무치게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