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장의 도화지

하늘, 땅, 그리고 바다

by 레마누


골목에 아이들이 없다. 7살 나는 내일 만나자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골목에 서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는 오지 않았다. 하루종일 혼자 놀았다. 오후가 되어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쏟아졌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입을 모아 유치원에 갔다 왔다며 너는 왜 안 왔냐고 물었다.



나는 유치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말로는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고, 점심이랑 맛난 간식도 같이 먹었다고 했다. 엄마를 크게 외치며 집으로 뛰어갔다. 마음이 급했다. 주인집 마당 제일 안쪽에 있는 방하나에 곤로가 놓여 있는 작은 공간에서 두 살 된 막내를 업고 엄마는 뭔가를 하고 있었다. 심지가 다 탔는지 석유냄새가 확 올라왔다.




엄마에게 다짜고짜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는 안 된다고 했고, 나는 아이들이 다 다니는데 왜 나는 안 되냐며 울었다. 아무리 떼를 써도 엄마는 끄덕도 하지 않았고 저녁도 안 먹은 채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텅 빈 골목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다 생각했다. 나도 유치원에 가야지. 그 다음날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에 갔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왠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마당한구석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나뭇가지로 쓱쓱 그렸다. 발로 지웠다 하며 현관문을 슬쩍 쳐다보보았지만, 아무도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만 왠지 집에 가기 싫었다.



아이들이 나오면 같이 놀다가 아이들이 들어가면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흙을 쌓거나 개미를 따라다녔다. 하루종일 애꿎은 땅만 팠다. 잘 마른땅에서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혼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바다를 보러 갔다. 마음이 들끓었던 열일곱의 나와 모든 것이 불투명해서 서글펐던 스무 살의 나는 마음이 울렁거릴 때마다 바다를 보며 무언가를 그려보곤 했다.




대상은 그때그때 바뀌었다. 그리운 사람이었다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힘들었던 하루였다가 문득 즐거운 추억으로 바다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게 꼭 출렁이는 내 마음 같았다. 바다 건너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 앞에는 감당할 수 없는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든 아무 말 없이 포용해 주었지만 결코 제 곁을 내주지 않았다. 정확하게 선을 긋고 그 안에서 살아라. 말하는 것 같았다. 바다를 한참 보고 있으면 뛰어들고 싶어졌다.







땅에 그림을 그리며 혼잣말을 하던 아이가 바다를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운 것은 모두 하늘에 있었다. 구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흘러간다.




하늘만 보면 눈물이 나왔다.




왜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하늘로 가 버리는지 이유도 모른 채 나는 보고픈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하늘을 쳐다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늘을 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나는 점점 외로워졌다. 가끔 유혹하듯 비행기가 지나간다.


저 비행기를 타면 나도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매일 꿈을 꾼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가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7살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보다가 뜬금없이 하늘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바다와 하늘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으면서 언제나 사이좋은 척 딱 붙어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