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을래?

미안하다의 다른 말

by 레마누

자궁이 늙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은 간결하고 정확하게 가슴을 찔렀다. 눈이 마주치면 후회할 말을 할 것 같아 집에 돌아오는 내내 창밖만 봤다. 세상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만큼이나 일그러져 있을 남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차에서 내려 바로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누웠다.


서럽고 슬펐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고, 아이 없이 두 사람만 살아갈 생각을 하니 슬펐다. 시험관을 실패할 때마다 울어서 이제는 나올 눈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누우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만 났다. 한숨 쉴 기운조차 없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노크를 하고 남편이 문을 열었다. 얼굴만 보이는 남편이 말한다. 나와 봐.

머리 아파. 잠깐만 나와 봐. 싫어. 남편은 내가 일어설 때까지 문을 잡고 서 있을 것 같았다. 손세수를 해서 눈물자국을 지우고 밖으로 나갔다.


남편은 부엌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다. 물 한잔도 혼자 마시는 법이 없었다. 뭘 먹고 싶으면 언제나 나를 불렀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라면을 끓였다. 익숙하고 강렬한 냄새에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시험관 결과가 좋으면 밖에서 맛있는 거 먹자고 했던 아침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다는 말에 남편도 상기된 얼굴로 빨리 병원에 가자는 바람에 아침을 거르고 병원에 갔다. 실패라는 말보다 시험관을 몇 번 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말이 너무 아파서 배고픈 줄도 몰랐었다.


먹고 자. 어제 한숨도 못 잤잖아.

남편이 먼저 냄비에 있는 라면을 덜어 그릇에 담았다. 못 이긴 채 앉아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었다. 고개 숙인 채 말없이 라면만 먹었다. 남편이 김치접시를 슬그머니 밀었다. 그때 만났다. 남편의 젓가락을.

고개를 들었다. 병원에서부터 눈 마주치면 울 것만 같아서 피했던 사람의 눈이 보였다. 남편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괜찮아.

뭐가.

아이 없어도 돼. 우리 둘만 살면 되지.

정말?

그럼.

근데 라면 맛있다.

그럼 나 라면 잘 끓여.

그런데 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끓였어?

네가 끓여주는 게 더 맛있으니까.

뭐야. 이제부터 라면은 오빠가 끓여.

그 말할까 봐 지금까지 안 끓였는데.

뭐야. 정말.


그날 우리 부부는 라면을 먹고 더 이상 시험관시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된다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도 했다.


라면 먹을래?

우리 부부에게 이 말은 미안해와 잘못했어의 또 다른 표현이다. 당신이 끓여. 이 말은 용서할게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마. 가 담겨 있다. 그리고 머리를 맞대고 라면을 먹는다. 김이 나는 국물을 후후 불며 들이마시고 꼬들꼬들한 면발을 먹는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이라는 듯이 깔깔대며 먹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 장의 도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