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세척기와 남편

생각하기 나름

by 레마누


작년 여름 온 가족이 코로나로 힘들었을 때 남편이 생각한 건 식기세척기였다. 코로나와 식기세척기가 어떻게 연결이 됐을까 생각해 봤다. 남편은 내가 아프자 집이 특히 부엌이 엉망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도 집안일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았던 남편은 여전히 부엌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거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내가 드러눕자 삼일동안 집에 있는 모든 그릇이 밖으로 나오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체념이라는 건 무서운 것이어서 나는 몸이 조금 가벼워지자마자 집청소를 시작했고, 남편은 서둘러 식기세척기를 사러 갔다.



하나도 고맙지 않은 행동이었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쉬운 방법 돈으로 해결하는 것. 말을 해도 화를 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게 그나마 쉽다.



식기세척기라는 게 참 이상하다. 처음에는 유리컵이 빛나는 것이 경이로웠다. 고온살균을 끝낸 그릇들은 뽀드득거렸고 살짝 뜨거운 그릇을 꺼내 정리를 하면 머릿속도 정리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부엌이 식기세척기가 없을 때보다 더 엉망이다. 왜 그럴까?



우리 집은 대부분 삼시 세끼를 먹는다. 식구가 5명인데 저녁은 거하게 먹어서 그릇을 많이 쓴다. 아침밥도 꼭 먹는다. 싱크대에 그릇이 쌓인다. 식기세척기가 없을 때는 그릇을 그때그때 씻었는데 요즘은 싱크대에 그릇이 가득 쌓일 때까지 기다린다. 한꺼번에 모아서 식기세척기를 돌린다. 그러다 보니 부엌은 식기세척기를 돌리는 순간만 깨끗하고 그다음에는 항상 씻을 그릇들이 가득해서 지저분하다.



편리하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편의점에 가면 즉석식품들이 종류도 다양하게 놓여있다. 전자레인지 3분이면 요리가 뚝딱이라는 건 강력한 유혹이다. 아이들도 삼각김밥에 사발면을 매일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극적이고 맛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몸에는 좋지 않다.



사람관계는 또 어떨까. 금세 만나 친해지는 사람이 있다.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입속의 사탕처럼 군다. 한 번의 어긋남도 없이 딱딱 들어맞는 사람을 만나면 왜 이제야 만났나 아쉬울 때도 있다. 금세 익혀지고 금방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 같은 사람. 건강을 해치고 유통기한이 짧지만 그만큼 강렬한 유혹.



한라산을 5시간 동안 오르고 나서 정상에 앉아 먹은 사발면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즉석식품이 나쁜 게 아니다.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 딱 들어맞는 것들이 있다. 그때가 언제이고 어떤 것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정하는 건 나다. 나밖에 모른다.



어렸을 때 공상소설에서 미래의 인간은 머리만 크고 몸과 팔다리는 퇴화한다는 글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걸을 일이 없으니 다리는 힘이 빠지고 무거운 짐은 들어본 적 없는 팔은 가늘고 길어진다. 몸에 좋은 것들은 쓰고 단단하고 질긴데 속에 들어가면 위를 자극하고 장을 움직이게 한다.



미래의 인간들은 그것도 힘들다며 하루에 한 알 먹는 알약을 먹는다. 배고프지 않으니 식사시간이 없고 남아도는 시간에 더 많은 공부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끔 나도 그런 미래의 흉측한 인간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울 때가 있다.



편리하고 간편한 것이 좋기만 할까? 인생을 살아가는데 고난과 고통은 과연 독일까? 이득일까?



나는 고생 없이 자라 무탈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재미가 없다. 싸운 적도 없고 누군가를 못 견디게 미워해본 적도 없고 죽을 만큼 사랑해 본 적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진이 빠진다. 재미가 없다.



폭풍우가 몰아쳐서 바다를 한번 뒤집어 놓아야 바다의 생물들은 정신을 바짝 차린다. 아무 걱정 없이 살다 휘몰아치는 인생의 혹한에 벌벌 떨며 삶을 배운다.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호되게 맞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복수를 꿈꾼다. 그렇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건 언제나 남편이라 쓰고 남의 편이라고 읽는 사람이다. 행여나 마누라가 나태해질까 봐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킨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 날 것 같다.


책 읽을 때마다 불을 꺼버리는 당신, 사랑합니다. 제가 쓴 글을 읽어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당신, 사랑합니다. 제가 만약 좋은 글을 쓰게 된다면 제가 하는 모든 것에 시비를 걸어준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이 있어 나태하지 않고 이를 박박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이 가슴에 콕콕 박혀 잠 못 자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작가로 만들기 위한 노력임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참 고생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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