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소연 좀 해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큰 딸의 가슴에 멍울이 잡혔다는 것을 알고 나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8킬로에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다. 자기 몸보다 큰 교복을 입고 교문에서 손을 흔들며 학교에 들어가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곤 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자 절에 가서 백팔배를 했다. 절하며 빌었다.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주세요. 잘 키우겠습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말이 없었고, 절을 하는 내내 한 가지만 생각했다.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주세요. 백팔배를 해도 힘이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하루종일 절만 하고 싶었다.
임신을 확인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이미 세 번의 유산을 경험해서 그런지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임신 석 달이 될 즈음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습관성유산일 수 있다는 말에 입원을 결정했다. 4번째 찾아온 아이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며칠 동안 누워 있었다. 나를 지웠다. 아이만 생각했다.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게 찾아온 아이였고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안 올 것 같았다. 뱃속의 아이가 건강하다는 말을 듣고 퇴원을 했지만 집에 가서도 내내 살얼음을 걷듯 10달을 살았다.
귀한 아이여서 그랬을까. 남편은 2.9킬로인 아이를 안을 수 없다고 했다. 안으면 바스러질 것 같다며 목욕도 시키지 못했다.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빈 젖을 물렸다.
아무리 미역국을 먹어도 젖이 나오지 않았다. 젖을 쥐어짰다. 유축기의 강도를 제일 세게 하고 젖꼭지가 빨갛게 되도록 짰다. 겨우 60미리를 채웠다.
아이는 분유를 거부했다. 어미가 젖이 나오지 않으니 분유라도 먹어야 클 텐데 어떤 분유를 먹여도 고개를 돌렸다. 할 수 없이 이유식을 일찍 시작했다. 돌사진을 찍을 때 아이는 8킬로를 겨우 넘겼다. 대여한 돌드레스가 너무 커서 아이가 파묻혔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키가 작고 목소리가 컸다. 장성한 아들 둘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도서관 도우미를 하던 날 점심시간이었는데 딸아이의 반 아이들이 모두 도서관에 왔길래 우리 보경이는 왜 안 올까? 물었더니 점심을 다 안 먹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이 급식을 다 먹을 때까지 못 나간다고 했는데 의지의 한국인인 우리 큰 딸은 끝까지 안 먹고 버티었다고 한다. 엄마가 해 준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게 보리차라고 적는 아이였다.
먹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속이 뒤집힌다. 입술을 위아래로 잡고 억지로 벌려 넣어주고 싶다. 옆에서 네가 맨날 먹여주니까 아이가 먹을 생각을 안 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주둥이를 한 대만 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13살이 되도록 요구르트를 혼자 까서 먹을 생각을 못 하게 만든 건 나다.
모든 원인은 나다. 건강검진을 하면 10% 안에 겨우 들까 말까 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어떻게든 먹이고파서 발버둥 쳤던 내 잘못이다. 8살 때 가슴에 멍울이 잡힌 18킬로의 딸을 데리고 석 달에 한번'씩 성장클리닉을 다니며 조마조마했던 것도 내가 자처한 것이다.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주세요 빌어서 낳은 아이가 작을 줄은 몰라서 이토록 안 먹을 줄은 몰라서 안절부절 못 했지만 티 내지 않고 행여나 키 작은 시누이나 시부모를 닮을까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나다.
방학에 치과와 성장클리닉에 가야지 생각했었다. 오늘이 그날이다. 세 아이를 데리고 갔다. 성장판검사를 했다. 단호하게 큰 딸의 성장판이 닫혔다고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큰 딸의 나보다 큰 손을 잡았다. 다리도 손도 나보다 긴데 상체가 짧아서 엄마보다 키가 작은 우리 큰 딸은 많이 놀란 듯했다. 나도 그랬다.
시간이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이토록 단호하게 말씀하시면 나는 어쩌란 말인지. 큰 아이의 키는 평균보다 한참 작다. 엄마 욕심에 160만 넘었으면 하는데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상황에선 나보다 크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잔뜩 긴장한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괜찮아.
생각해 보면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했지 키 큰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는 안 했다. 아이는 그 자체로 내게 소중한 존재다. 키가 크면 물론 좋겠지만 평균보다 작다고 불이익이 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 자체를 보기보다는 언제나 바른 자세를 요구하고 키가 크기를 바랐던 나의 욕심이 아이에게 짐이 되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남편은 아이에게 지금이라도 운동을 하라고 한다. 사실 8살 때 성장 클리닉에 갔을 때 예상키는 150이었다. 그것보다는 컸으니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다. 키가 크면 물론 예쁘겠지만 작아도 당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성장판이 닫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속상해서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다. 속상한 건 뒤로 하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아이가 없을 때는 아이가 생기길 바랐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고 이왕이면 공부도 잘하면서 키도 크길 바라게 된다. 솜사탕을 만들듯이 계속 허공에 대고 손을 돌린다. 중요한 건 언제까지나 커지는 솜사탕은 없다는 거다. 적당할 때 멈춰야 좋은 모양이 나온다
큰 딸의 미래가 어떤지는 엄마지만 나도 잘 모른다. 아이가 나보다 키가 컸으면 좋겠지만 만일 그렇게 안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로서 딸이 키가 클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 그다음은 딸이 생각할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야말로 어른이냐 아니냐를 가로 짓는 결정적 단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줄넘기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