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살스테이크와 참치김밥의 환상적 조화
매일 생각한다. 저녁을 먹지 말아야지. 어젯밤을 끝으로 6시부터는 금식이다. 아침은 운동하러 가야 하니까 삶은 달걀과 바나나, 사과를 먹는다. 운동 끝나고 나서 점심을 먹는다. 배고파서 많이 먹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녁을 안 먹으면 돼. 그럼 살이 빠질 거야. 다른 쪽 머리에서는 오늘 저녁 뭘 할까 고민하고 있다. 언제나 똑같은 고민이지만 결론이 같은 적은 없다.
요즘처럼 방학이면 삼시 세 끼를 먹는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침에도 꼭 밥을 먹는다. 방학이지만 일찍 일어나서 8시에 아침밥을 먹는다. 먹고 운동 갔다 오면 점심때다. 남편과 같이 운동하면 좋은 점이 내가 힘든 걸 알아준다는 것이다. 점심은 주로 밖에서 사 먹는다. 밥 할 기운이 없다. 오늘처럼 하체운동한 날은 정말이지 다리가 후덜덜거린다. 빨리 익숙해져서 운동하고 나면 기운이 난다는 말을 했으면 좋겠다.
거하게 점심 먹고 한숨 자고 나면 그제야 기운이 난다. 오늘 저녁은 막둥이가 주문한 참치김밥이다. 며칠 째 열감기로 고생했던 막둥이는 아팠을 때 못 먹었던 걸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아주 잘 먹고 있다. 어젯밤에 끓인 소고기미역국을 그릇째 들고 마시는 걸 보고 다 나았구나 생각했다.
남편은 요즘 매일 고기타령이다. 트레이너가 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했다며 아침부터 고기, 고기 노래를 부른다. 성장기에 있는 세 아이에 이어 근육돼지가 되고 싶은 남편님까지 매일 고기를 굽고 있는 베짱이다
오늘은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해서 목살스테이크를 만들었다. 동네 정육점에 가서 질 좋은 목살을 3만 원어치 샀다. 약간 두껍게 썰어달라고 했다. 프라이팬에 구울 때는 허브솔트를 뿌렸는데 이번에는 그냥 고기만 넣었다. 그런데도 맛이 기가 막혔다. 익었는지 확인만 하려고 했는데 고기가 너무 부드럽고 담백해서 맛보기로 세 개를 먹었다.
냄새 맡고 달려온 아들이 식탁 위에 있던 김밥하나를 집어 먹는다. 앗, 사진 안 찍었는데. 아쉽지만 맛있다며 웃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 며칠 전 아들이 흔한 남매 김밥을 만든다며 샀던 김밥용 김과 단무지, 햄이 있어서 준비하고 당근을 채 썰어 볶았다. 깻잎을 씻고 참치통조림 두 개를 꺼내 기름을 짠다. 쫙 힘주어 짜고 마요네즈를 그 위에 뿌렸다.
김밥집에서 파는 참치김밥의 두 배 정도는 많이 들어간 참치마요네즈. 고소하고 담백했다. 계란지단을 두껍게 만든다. 김밥 속에 들어가는 계란이 크고 두꺼우면 김밥이 부드럽다. 햄을 싫어하는 막둥이가 김밥 하나에는 햄을 빼 달라고 했는데 까먹었다. 쿨하게 괜찮다고 말하는 막둥이다.
조촐하지만 풍성한 저녁밥상이 차려졌다. 요즘 우리 가족은 아이들 방에서 저녁을 먹는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서 우리 집에서 제일 시원한 곳이다. 다섯 식구가 아이들 공부책상에 오손도손 앉아서 먹는다. 상이 작으니 이것저것 차려놓는 것보다 간단하면서 함께 먹을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차리게 된다.
어제 어머님이 부추를 한 아름 캐고 씻어서 주셨다. 얼떨결에 부추김치를 했다. 하룻밤 새 잘 익은 부추김치를 꺼냈더니 김밥하고 제법 어울렸다.
오늘은 맥주 대신 트레비를 마셨다. 깻잎 사러 갔을 때 냉장고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시원하게 맥주도 마시고 싶고, 막걸리도 당겼다. 잘 익은 부추김치에 막걸리가 얼마나 환상적인 궁합인지 알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깻잎 하나만 들고 나오는데 섭섭하면서도 묘하게 기뻤다. 돈이 있고 앞에 술이 있는데 사고 오지 않은 나를 우쭈쭈 해줬다. 나 요즘 제법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다.
엄지 척을 해 준다. 이 맛에 땀 흘리며 음식을 한다. 남편에게 왜 오빠는 아무 말도 안 하냐고 했더니 막둥이가 말한다. 엄마, 원래 맛있으면 계속 먹게 되는 거야. 아빠 봐봐. 말할 시간도 없이 계속 먹고 있잖아. 그럼 맛있는 거야. 나보다 아빠를 더 잘 아는 9살 막둥이다.
물을 뜨러 갔다 와 보니 남편 혼자 앉아 있었다. 고기접시가 텅 비었다. 그제야 남편이 말을 한다. 이게 좋다. 응? 뭐가? 이렇게 하니까 고기가 느끼하지를 않네. 오빠 정말 맛있었구나?
만들 때는 힘들지만 접시가 싹 비어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다. 그 맛에 다시 뭘 만들어서 우리 식구들 배를 빵빵하게 만들까 생각하게 된다. 글도 책 읽기도 운동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 운동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보다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가고 있다. 갈 때도 힘들고 할 때도 힘들지만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중요한 건 글쓰기와 책 읽기는 살짝 뒤로 밀려났다는 거다. 더워서 머리가 익어버렸는지 책이 안 읽힌다. 내일까지 글쓰기 마쳐야 하는데 작정해서 쓰려고 하니 글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는다. 그 와중에 오늘 이불빨래하고 화장실 청소했다. 시험 공부 하다 느닷없이 방청소했던 그때처럼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자꾸 딴 데 눈이 돌아간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내일은 이제 곧 찾아오고, 발등에 불 떨어져서 밤새워 공부하듯 내일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려야 한다는 걸. 오늘 내가 트레비를 마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