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혼자 살 때 지독한 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거든. 약국에서 감기약 사다 먹으면서 3일을 견뎠어. 이불 뒤집어쓰고 땀 흘리면서. 그땐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병원도 안 가고 버텼어. 며칠 버티니까 살만해지더라. 그때부터 감기에 잘 안 걸린 거 같아. 이겨낸 거지.
막둥이가 지난주 토요일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며칠째 38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해열제를 두 시간에 한 번씩 번갈아 먹였는데 먹으면 조금 내리는 듯하다 다시 열이 오르길 반복했다.
남편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 시대의 부모님들은 너무 바빴다. 크게 다쳐서 피가 철철 흐르지 않는 한 병원에 간다는 건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감기에 걸리면 삼복더위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흘린다. 온몸이 땀에 절고 몸이 늘어질 때쯤 오래 써서 풀풀한 하얀 쌀죽에 간장 종지를 갖다 줬는데 며칠 동안 제대로 못 먹어서 눈이 휑해졌을 때 먹는 흰쌀 죽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바닥이 보이게 박박 긁어먹고 있으면 엄마가 안심하는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게 키워야 강한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다. 제때 병원에 데려가서 얼른 낫게 해 주는 게 좋은 건지 스스로 이겨내게 하는 게 좋은 건지를 두고 엄마인 나는 항상 고민한다. 하지만 아이가 밤에 열이 오를 때면 절로 하느님을 찾고 당장 병원에 달려가는 것도 엄마맘이다. 병원에서는 열감기라고 하며 항생제 처방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둥이의 열은 내리지 않았다. 오늘부터는 기침도 심하게 했다. 아픈 아이를 두고 어제 골프를 치러 갔다 왔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좋아하던 푸주옥 설렁탕도 서가 앤 쿡의 목살 스테이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후에 소아과에 데려가서 코로나와 독감검사를 했다. 다행히 둘 다 음성이 나왔다. 소아과선생님은 요새 열감기가 유행이라고 하며 다른 항생제를 처방했다. 용량이 훨씬 많았다. 뭘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고개만 젓는다. 비상사태다. 먹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인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니 정말 아팠나 보다. 싶어 더럭 겁이 났다.
피아노레슨을 하기 전에 집 근처 커피숍에서 수박주스를 사다 줬다. 주스를 먹고 기운이 났는지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막둥이의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마트로 달려갔다. 마침 암퇘지작업을 금방 마쳤다는 사장님이 삼겹살을 썰어주셨다. 한눈에 봐도 싱싱하고 맛있어 보였다.
우리 식구는 돼지고기에 민감하다. 맛있는 고기만 골라 먹다 보니 웬만한 고기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구워 주는 고기도 맛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집에서 삼겹살을 굽는다.
7월의 마지막날에도 나는 맥주를 먼저 마시고 고기를 굽는다. 여름 맥주는 한숨에 벌컥벌컥 마셔야 한다. 속이 시원하게 뚫리고 나면 고기가 잘 들어간다. 프라이팬 두 개에서 부지런히 고기를 굽다 다 익을 즈음 한쪽 프라이팬에 익은 김치를 넣고 볶는다.
금방 한 하얀 밥과 바짝 구운 삼겹살, 구운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상추와 깻잎을 사러 갔다 가격에 후들후들 떨며 잡았던 손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동네마트는 야채가 비싸다. 내일 하나로마트에 가서 야채를 사놓아야겠다.
아들이 마트에 따라왔다. 흔한 남매에 나온 김밥을 만들고 싶다며 재료를 샀다. 아들의 장래희망은 현재까지는 요리사다. 책에서 배운 대로 김밥을 만들고 먹어보더니 맛있다며 엄지 척을 한다. 나는 그 안에다 고기와 구운 김치를 넣었다. 아들이 업그레이드했다며 좋아했다.
다행히 막둥이도 오빠가 만든 김밥을 잘 먹었다. 고기는 고기대로 먹더니 배가 부르다며 뒤로 물러선다. 잘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낮에 분명 다이어트를 한다고 인스타에 올렸지만 저녁을 배 터지게 먹었다.
밥은 안 먹었고 고기만 먹었으니 괜찮다는 마음과 엄마가 잘 먹어야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안 낸다는 나만의 변명을 해 본다. 그나마 맥주를 하나만 먹은 건 칭찬할만하다. 그렇게 7월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