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런 거야?

말을 못 해서 글로 씁니다

by 레마누


나는 경계한다. 나의 사고가 이분법이 되는 것을.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거나 혹은 이것이 진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경직된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찾아내거나 잡식성동물처럼 다양한 분야를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하나의 방편이다.



제주도를 벗어나보지 못한 내가 제주도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다. 인터넷과 핸드폰이 보여주는 넓은 세상을 헤매다가도 때가 되면 고개를 떨구고 현실로 돌아온다. 모험과 일탈을 누구보다 꿈꾸지만 겁 많은 고동처럼 자신만의 집에서 나올 생각을 못한다. 고개만 삐쭉 내밀었다 급하게 집으로 들어가서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면서 어디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며칠 전 일이다. 방학이지만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받은 아들을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셀프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고 세차를 했다.



5월 초에 나온 새 차다. 아이들 픽업용으로 뽑은 소형차지만 내게는 소중한 애마였기에 신경 써서 세차를 하고 있다. 남편이 사준 세정제를 뿌리며 세차가 끝난 차를 새로 산 수건으로 열심히 닦고 있었다



엄마, 여기 비닐 떼도 돼?


어?


손잡이 네 군데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가리키는 아들이다.


어, 그러게. 왜 안 뗐지? 그럼 네가 그쪽 뗄래? 내가 이쪽 뗄게.


엄마, 근데 이게 떼기가 힘들다.


너무 늦게 떼서 그런가? 나도 힘드네.


엄마, 이건 정말 안 떠지는데


어쩌지?



그렇게 우리 모자는 36도인 한낮에 세차를 하고 반짝이는 새 차에 매달려 테이프를 뗐다.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그만하자. 도저히 안 되겠어.


엄마, 그래도 깨끗하니까 좋다.


그렇지.



뿌듯해하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오빠, 차 어때? 오빠가 사준 걸로 닦았는데 반짝반짝하지?


어.


근데, 테이프는 너무 떼기 힘들더라


무슨 테이프?


그거 있잖아. 차 문 손잡이에 있는 거


그걸 왜 떼?


어?


그거 흠집 나는 거 보호하려고 붙어 있는 건데 그걸 왜 떼냐고?


아니 난 떼야하는 줄 알고


넌 그게 잘 안 떼지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아니, 늦게 떼서 안 떼지는 거구나 했지. 그래서 더 열심히 뗐는데?


그러니까 그렇게 안 떼지는 걸 왜 뗐냐고. 하나만 보지 말고 제발 다르게 좀 생각해 보면 안 되냐고



한참 후에 둘만 있을 때 말을 꺼냈다



모르고 그랬어


그걸 꼭 말해야 아냐?


말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상식적으로


나는 그냥 차 닦는데 보이길래 깨끗하게 하고 싶어서 그랬지. 그런데 오빠는 그런 내 맘도 모르고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하면 내가 속상해? 안 속상해?


너는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


시간이 흘러서 테이프가 안 떼지는구나 생각했다니까


그건 떼기도 힘들었을 텐데, 안 떼지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해?


그러니까 금방 떼야하는데 안 떼서 힘들구나 생각했다고




내 말도 맞고 남편말도 맞다고 생각한다. 모른 채 너무 열심히 한 건 내 잘못이다. 차를 닦는 김에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손잡이밑에 테이프가 보였고 나와 아들은 낑낑대며 그걸 떼어 냈다. 남편은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걸 떼어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안 떼지는 비닐을 기어이 떼려고 한 건 내 잘못이다.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줘야 하냐고 묻는데 그걸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나가고 있다. 하나에 익숙해져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두 세 걸음을 내딛는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졌던 그 옛날처럼 나 역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맞춰 살려니 눈알이 핑핑 돌 때가 있다. 사는 건 편리해졌는데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편하려고 만드는 것들이 언제부턴가 일상을 장악하고 이런 건 다 하는 거야. 하며 의시 댄다.



다 때려치우고 나 몰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세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내가 학생인가 싶을 정도로 공부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핸드폰과 컴퓨터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밀려난다. 러닝머신 위에서 정신없이 뛰는 기분이다



억측이 아니냐고 해도 할 수 없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왜 그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사실 간단한데 이것저것 옵션을 달아놓고 선택을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사람을 몰아세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나도 언젠가는 적응하겠지만 그럼 뭘 하나 적응할만하면 또다시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 요건 몰랐지. 메롱.



노력한다.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며 뉴스도 종종 참고하면서 맘카페에서 정보도 얻는다. 앞서가지는 못해도 뒤처지고 싶지는 않다. 가끔 밀려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고의 유연함을 추구하지만 자꾸 불평과 불만을 하게 된다. 겉으로는 다 이해하는 척했던 날이면 혼자 맥주를 홀짝이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알고 있는 척하려니 얼굴이 경직되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또 기웃거린다. 포기할 용기도 없고 뛰어들 배짱도 없어서 오늘도 말 잘 듣는 자판기나 두들기고 앉아 있다.



이게 도대체 새 차 손잡이에 붙어 있는 무진장 안 떼지는 테이프와 무슨 연관이 있는 글인지도 모르지만 억울한 마음이 쓰라고 하길래 일단 쓰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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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vdalya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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