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차이

열손가락 깨물면 유독 아픈 손가락이 있다

by 레마누


왜 그래?


화났어?


한참 동안 오빠와 축구하던 막둥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걸어온다


입은 이만큼 내놓고..


운동장 10 바퀴 돌려면 아직 멀었다.


하기 싫으면 집에 가자.

(애들과 같이 와서 내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부터가 잘못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막둥이)


그게 아니라 뭐?

(날도 더운데 운동장에서 우는 막둥이를 달랠 힘이 없는 늙은 엄마)


가슴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화를 누르며 최대한 다정하게?? 말한다 속이 타들어갔다.


오빠가....


오빠가 왜?


말없는 남자와 결혼한 건 알았는데 아이들이 아빠를 꼭 닮는다는 건 생각 못했다. 셋 다 입을 떼는 게 한라산 올라가는 것만큼 힘들다. 남편한테 적응하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올라오는 답답함.








우물우물 말하지 말라고 했지.


가끔 이런 말을 하고 나서 라푼젤마녀를 떠올리고 급반성한다.




딱 일분만 참자.


성질 급한 B형 여자인 내게 너무도 어려운 주문.


하지만 말 없는 남편과 아이 셋을 키우려면 꼭 필요한 주문




크게 숨을 쉬고 나서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괜찮아.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줘. 엄마는 막둥이가 왜 우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기다릴게.




있잖아..


이때도 경거만동을 하면 안 된다. 최대한 무심한 척. 아이가 말을 하기도 마음을 먹기만 하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젠가는 한다




오빠가..


아. 오빠얘기라서 망설였구나. 평소 오빠에게 한없이 관대한 엄마와 그걸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항상 왜 오빠만 챙기냐고 묻는 오빠보다 두 살 어린 막둥이. 눈치 백 단이다.




오빠가 왜?


오빠가 신기한 거 보여 준다고 해서 보여줄 때 나는 와. 신기하다. 했거든

근데 내가 신기한 거 보여줄 때는 오빠가 아무 말도 안 했어.












어렸을 때 동생은 돈을 무척 밝혔다. 어린아이가 왜 그러냐 싶을 정도로.


내가 고등학생 때는 우체국아저씨가 우편으로 갖다 주는 성적표를 빼돌리고 난 후 오천 원을 받아냈다. 세뱃돈을 엄마한테 빌려주고 나서 이자까지 내놓으라고 했던 아이였다. 할아버지를 도와 주차장 알바를 하며 시간당 아르바이트비를 받았다. 모든 일에 돈이 먼저인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언니는 큰언니라서 둘째 언니는 일을 착하고 말을 잘 들어서. 그런데 막내는?




형제자매만큼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가 있나 싶다. 어린 시절의 형제자매는 원수처럼 보일 때가 있다.. 먹을 것을 빼앗고 내가 다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나눠줘야 하는 존재. 엄마의 사랑을, 아빠의 웃음을 독차지하지 못하는 건 다 너 때문이야.



형제자매가 없다면 누리는 것만큼 의무가 무겁다. 누군가와 나눠가질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걸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큰딸이어서 둘째는 일을 잘하고 착해서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았다. 막내는?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뭐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어느 날 큰 딸이 외동인 친구가 부럽다는 말을 했다. 안다. 나도 매일 밤 동생들이 사라지기를 기도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동생들이 줄줄이 있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고난의 행군같은 거다.

뭘 할때도 뭘 먹을 때도 어디를 갈 때도 나도. 나도. 하고 달려든다




하지만 나는 엄마이므로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야한다.


한쪽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다른 눈이 커진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분명 없지만


마음가는 손가락이 있다는 것은 혼자만의 비밀로 하고


언제나 마음은 중립기어를 놓고 살아야 한다.




막둥이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내 얘기를 제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은 가족뿐이라는 것을.


막둥이도 언제가는 알게 되겠지


오빠가 있어서 든든하고 힘이 된다는 것을.


지금은 키도 몸무게도 많이 차이가 나지만 언젠가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될 즈음 언니, 오빠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오빠에게 아픈 마음을 달래 줄 팥빙수를 사러 가는 길.


막둥이가 신나서 춤추듯이 걷는다.


팥빙수하나에 마음이 풀리다니.


참 부러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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